수정란 줄기세포를 '맞춤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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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 의혹 제기 TV 보도가 나온 1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대 연구실로 한 연구원이 들어가고 있다. 변선구 기자

미즈메디병원에서 줄기세포의 현미경 사진을 찍었던 김선종 연구원, 노성일 이사장 등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황우석 교수의 논문은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올 5월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개발 연구 논문은 황 교수팀과 미즈메디병원, 서울대병원, 미국 피츠버그대 등 7개 기관이 협업을 한 결과라고 발표됐다. 실제 논문의 공저자로 기록된 사람도 25명이다. 공저자 중 한 명인 김선종 연구원은 MBC PD수첩 팀과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2, 3번 줄기세포의 사진을 열 장 정도 찍었다"며 "해서는 안 될 일을 해 마음의 부담이 됐다"고 말했었다.

사진 중복은 동일한 세포 배양판에 있는 줄기세포의 사진을 크게, 또는 작게 찍거나 찍은 사진을 찌그러뜨리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논문 부록에 실린 48장의 사진 중 10장이 중복됐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5번과 10번 줄기세포 사진은 동일한 줄기세포이며, 4번과 7번 줄기세포 사진 역시 동일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사진 조작 여부가 의혹 차원에 머물렀지만 많은 생명공학연구자가 어떤 방식으로 중복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내 황 교수팀을 곤혹스럽게 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줄기세포 조작 의혹을 제기한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다. 한국과 일본의 생명공학자들은 논문 부록에 올라 있는 사진 중 조작 의혹이 있는 부분을 떼어,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줄기세포 사진과 중첩시켜 봄으로써 그런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줄기세포의 DNA 지문 검사 결과에 대한 조작설도 나왔다. DNA 지문의 경우 삐죽삐죽 튀어 올라오는 마커의 모양이 줄기세포마다 모두 달라야 정상인데, 논문에서는 대부분 비슷해 조작 의혹을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 지문검사를 의뢰할 때는 연구자들이 검체(줄기세포 또는 기증자 체세포)가 아닌 다른 검체에서 추출된 DNA를 가져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가 아닌 다른 검체(환자의 체세포나 혈액 등)에서 추출한 DNA를 국과수가 검사했고, 이 결과가 논문에 실렸다는 추정이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경우 면역 거부반응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임을 확인하기 위해 조직 적합성(HLA typing)도 검사한다. 2005년 논문에서 환자의 체세포와 환자에게서 유래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는 조직 적합성이 똑같았다. 그래서 사이언스 논문심사 과정을 무난히 통과했다. 그러나 이때도 검체가 DNA 추출물이었다고 한다. 검사실에서는 DNA가 추출된 검체가 어느 것이었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는 뜻이다.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모든 줄기세포가 가짜인지는 현재까지 황 교수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 이사장의 말에 따르면 상당수의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 만든 맞춤형 줄기세포라고 발표됐지만, 그중 상당수의 사진은 미즈메디병원이 갖고 있던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의 사진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논문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체세포의 DNA 지문을 줄기세포 지문으로 둔갑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이는 사이언스뿐 아니라 세계 모든 학술지가 논문을 단지 서류에만 의존해 검증하기 때문이다. 논문 심사위원들이 연구 과정을 직접 들여다 보며 논문을 검증하지는 않는다. 논문이 조작됐을 것이라고 전제하지 않고 심사하는 것이다. 과학자의 양심을 믿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2001년 미국 벨연구소의 얀 헨드릭 쇤 박사의 허위 논문이 사이언스와 네이처 두 논문에 모두 실릴 수 있었고, 나중에야 조작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황 교수의 경우 줄기세포 사진과 DNA 지문 검사 결과 등을 치밀하게 만들어 보냈기 때문에 사이언스 측이 이를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추정은 논문이 잘못됐다는 가정 아래 성립된다.

특별취재팀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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