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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원·부자재 대규모 수출만으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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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수출이 삐걱거리고 있다. 1분기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 성장(전년 같은 기간 대비 -2.9%)했다. 무역수지는 흑자였지만 수출도 줄고 수입은 더 줄어든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로 건강하지 못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경제성장률(0.8%)의 성장기여도에서 내수는 1%였던 반면 순수출(수출-수입)은 -0.2%였다. 경제성장 효자였던 수출이 오히려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수출기업들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종합상사인 삼성물산은 영업이익이 57.7% 나 뚝 떨어졌다. 한국무역협회가 수출기업을 조사해 보니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10개 중 4개 꼴(38.4%)이었다. 2013년(33.3%)보다 더 늘었다. 한은은 엔저 영향과 유가하락으로 인한 석유화학군의 가격 하락에 따른 착시 현상, 중국의 성장률 둔화 등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하지만 무역업계는 엔저·유가하락 등의 단기적인 경기 요인보다 세계 무역시장 자체가 변하는 구조적 요인이 더 큰 장애라고 입을 모은다. 김극수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은 “과거 세계 경제가 1만큼 성장하면 무역은 2만큼 성장했는데, 3년 전부터 1대1이 됐다. 무역규모 자체가 줄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중국은 과거의 가공무역에서 벗어나 내수를 통한 경제성장으로 돌아섰다. 우리의 주요 대중수출 품목이었던 원부자재 수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출 회복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더 들어가 보면 수출을 어렵게 하는 건 이런 외부요인보다 내부의 준비부족 탓이 크다. 중국의 변화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예고됐었다. 중간재·부품 등을 벌크로 실어내는 한국형 수출구조는 조만간 한계에 도달할 것이 예견됐고, 산업구조조정 요구가 높았다. 나름의 구조조정도 했지만, ‘벌크 수출’의 테두리 안에서 품목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게 문제다.

 현재 중국 시장은 의류·화장품·의약품 같은 내수형 소비재 수입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에 수입선이 아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바뀌고 있다. 수출에서도 규모가 아니라 브랜드와 마케팅이 중요해진 것이다. 준비된 마케팅으로 생활산업에서 글로벌하게 성공한 기업도 있다. 아모레 퍼시픽이 대표적이다. 전형적인 내수용 화장품 기업에서 해외시장을 공략해 지금은 시가총액 규모로 글로벌 4대 화장품 업체로 변모했다.

 세계 무역시장은 제조기술에서 브랜드로, 섬유에서 패션으로, 가공무역에서 내수시장으로 변모하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있다. 업계에선 지금이 소비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고, 한국산 이미지가 높아져 기회라고도 한다. 문제는 수출정책이 여전히 ‘벌크 수출’ 위주여서 수출산업의 기조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수출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때다.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