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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급한 「도약의 청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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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지난 7O년대에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연평균 10%이상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수출했던 「메이드·인·코리아」들은 해외시장에서 대부분 중급이하의 대접밖에 받지 못했고, 결국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분야란 숙련되고 값싼 노동력에 의한 가격 면에서의 우위였음이 입증됐다.
그후 한쪽에서 선진국들이 기술이전을 꺼리면서 보호무역의 담을 높이 쌓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공 등의 추격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와 몇몇 기업들이 「첨단기술을 주축으로 한 첨단기술 제품의 생산만이 우리 경제의 활로」라는 자각아래 기술개발에서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이구동성으로 강조해온 「첨단기술개발」이 과연 얼마마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것이 세계수준과 비교해서 어디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 또 첨단기술 드라이브를 위한 제반 여건은 어떤지를 점검해볼 때 현실과 의욕사이에는 너무나 큰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하게된다.
20세기 최대 발명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산업의 쌀」로 일컬어지는 반도체의 경우를 보자.
우리나라는 10여 년 간의 단순조립가공 수준을 벗어나 작년 12월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64KD램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이 반도체는 현재 세계에서 수요가 가장 많은 초대규모 집적회로(VLSI)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제조수준을 일거에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전자·기계 등 각 산업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큰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이미 2년 전에 64KD램의 4배의 성능을 가진 2백56KD램의 개발을 완료해 놓았고, 지난 1월 일본의 히따찌(일립)사는 64KD램보다 성능이 16배나 되는 1메가비트D램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했다.
64KD램의 개발로 선진국과의 반도체기술 수준차이를 2∼3년으로 좁혔던 우리는 다시 5년 정도의 갭을 감수해야하는 실정이다.
반도체와 함께 앞으로 인간사회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되는 컴퓨터 분야에서도 그 기술수준 차이는 엄청나다.
1946년 미국에서 세계최초의 컴퓨터(에니아크)가 선보인 이래 미국과 일본 및 유럽 각국은 컴퓨터개발 경쟁을 벌여 현재는 인간의 사고능력에 비견될 초고성능컴퓨터인 「제5세대 컴퓨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작년부터 컴퓨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이제 겨우 중·소형컴퓨터 생산의 문턱에 들어선 상태다.
또한 미래산업으로 지칭되는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도 배우지 못한 젖먹이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준차는 로봇·NC 등의 메커트로닉스와 소프트웨어·유전공학·신소재 등 첨단기술산업 전체에 걸쳐 거의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술개발능력과 수준을 가름하는 기술개발투자만 봐도 82년에 ▲미국이 7백73억 달러(GNP대비2.53%) ▲일본이 2백79억 달러(2.44%) ▲서독이 1백83억 달러(2.66%)인데 비해 우리는 불과 6억1천만 달러(GNP의0.95%)를 써 규모 상으로나 대 GNP비율로나 상대가 되지 않는 빈약한 규모다.
정부는 기술개발투자의 규모를 86년까지 GNP대비 2%수준으로, 90년대에는 2.5%수준까지 올리겠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이는 선진국의 83년 수준보다도 밑도는 비율이다.
또 그때 가서 선진국들이 기술개발의 규모와 투자비율을 더욱 확대시킬 것이 확실한 것을 감안할 때 그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첨단기술개발의 여건마련이 안된 이유는 정부차원에서의 미온적인 정책추진으로 인한 기술드라이브 분위기 조성의 부진과 연구기관들의 방향감각 상실, 그리고 산업계의 근시안적인 기술개발전략 등이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말로는 「기술도약을 통한 선진공업국으로의 진입」을 정책의지로 천명해놓고도 관계부처간의 이해상충·시행예산의 부족(84년 과학기술예산 1천1백억원·총예산의 1.0%) 등으로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핵심거점기술을 선정·추진할 장기기술개발정책 수립조차 완성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기관은 연구기관대로 정부의 추진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표류를 계속하고 있고 기초분야를 맡은 대학은 대학대로 그늘에서 명맥만을 유지하고있는 실정이다.
기술개발에 역점을 두기 시작한 업계전체의 풍토는 바람직한 것이라 할 지라도 유사한 기술의 중복개발 또는 국내기술 수준을 도외시한 외국기술의 무분별한 도입 등으로 인한 경제적·인적 낭비가 적지 않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놓고 해결책을 찾아볼 때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뚜렷한 핵심기술분야를 선정해 연구기관과 산업체의 업무분장을 유도시키고 이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 시책을 펴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고 볼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경쟁적인 산업참여보다는 체질에 알맞는 첨단기술분야를 선별·채택하고 고려청자도공식보다는 대학·연구소·관련기업들과 공동으로 세계의 기업·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술개발을 추진하는 방향이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 맞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첨단공업국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일본도 미국과의 반도체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난 76년 후지산·히따찌·NEC·도오시바 등 7개 사가 공동으로 초LSI연구조합을 결성해서 통산성의 지원금을 포함한 1천억 엔의 연구비로 공동 연구한 결과 80년 완전성공을 거두고 관련업계에 기술을 공동 분배한 사례는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한국의 첨단기술이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약의 청사진을 마련해야만 빠른 시간 내에 선진국과의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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