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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투병 13년째 … 제2의 고향서 혼자 살만큼 강해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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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76년 12월 계간지 문학과지성 창사 1주년 기념식 직후. 문인들이 모였다. 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선작, 김광규, 김승옥, 최인호(작고), 오규원(작고), 김화영, 김현(작고), 김주연, 정현종, 오생근, 권영빈, 황동규, 김치수(작고), 황인철(작고), 김원일, 홍성원(작고), 이기웅, 김병익, 조해일씨. [중앙포토]

“얘, 죽었고…. 얘도 죽었어. 얘…, 많이 아프고…. 휴, 그런데 난 여기 있어. 살아 있어.”

 그가 손가락으로 흑백사진 속 인물을 한 명씩 짚을 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힘겨운 목소리로 “난 살아있어”라고 띄엄띄엄 내뱉을 땐 끝내 목이 메었다. 10년 넘게 성치 못한 몸을 추스려 여기까지 왔는데 친구들이 먼저 갔다며 그는 못내 아쉬워했다.

전남 순천시 순천문학관에서 만난 소설가 김승옥은 건강을 많이 되찾은 모습이었다. 말은 아직 어눌했지만, 혼자 걸을 수 있고 혈색도 좋았다.

 그의 이름은 김승옥(74)이다.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한국 현대소설의 거장 말이다. 그는 현재 전남 순천시 순천문학관에 살고 있다. 순천시가 운영하는 순천문학관에는 순천이 낳은 두 대가 김승옥과 정채봉(1946∼2001)을 위한 기념관이 있다. 낮은 초가지붕의 문학관에 딸린 작은 방 한 칸에서 그는 혼자 밥 해먹고 잠을 잔다.

 김승옥이 순천으로 내려온 건 이태 전 7월 4일이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 전 작가의 가족이 순천시에 전화를 넣었다. “순천시에서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였다. 순천시는 급히 예산 1000여 만원을 들여 방을 고치고 살림을 들였다. 순천시로서는 김승옥의 귀환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순천은 일본에서 태어난 작가가 다섯 살부터 서울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제2의 고향이다. 무엇보다 김승옥의 대표작, 아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잉태한 땅이다.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삥 둘러싸고 있는’ 소읍 무진이 순천이다. 안개 자욱한 순천만 제방을 거닐며 그는 성장했고, 긴 세월이 흐른 뒤 순천만 제방 곁의 초가로 돌아왔다. 고향을 떠날 때는 풋풋한 청춘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병들어 시든 몸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많이 회복한 모습이었다. 혼자서 걸음을 옮겼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만 말을 하는 건 여전히 힘들어 했다. 작가와 대화는 필담으로 진행됐다. 글씨에서 의외로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래프를 그리며 자신의 상태가 80%까지 돌아왔다고 전했다.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고 쓰기도 했다. 순천문학관 직원 조성혜(60)씨는 “한 달에 절반은 순천으로 내려오고 나머지 절반은 가족이 있는 서울에서 머문다”며“시간이 지날수록 순천에서 지내는 날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새 소설을 쓰는 건 아니다. 62년 발표한 단편소설 ‘환상수첩’을 시나리오로 고치고 있다. 문학관을 찾은 관람객이 작가를 알아보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기도 한다. 문학관에서는 김승옥의 작품을 판매한다. 판매 수익의 절반 정도가 작가에게 돌아간다.

 김승옥관 벽에 커다란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76년 12월 문학과지성사 창사 1주년 기념사진이다. 그 사진 안에 젊은 시절의 김승옥이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젊음을 보낸 한국문학의 얼굴들이 있다. 고(故) 최인호·오규원·김현…. 그가 안타까워하며 짚은 얼굴이 사진 속에선 싱싱하게 웃고 있었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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