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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74> '드론계의 애플' dji와 드론 춘추전국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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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신경진 기자

지난 8일 중국 드론(무인기) 제조사 ‘다장촹신(大疆創新·dji)은 뉴욕·런던·뮌헨에서 동시에 ‘dji 라이브’ 행사를 열었다. 신제품 ‘팬텀3’를 소개하는 행사였다. ‘팬텀3’는 4K UHD급 초고화질 동영상의 스트리밍 촬영이 가능한 최신형 드론이다.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드론계의 애플’ dji와 역동적인 중국의 드론 업계를 살펴봤다.

민간 시장규모 2021년엔 50억 달러로

dji 팬텀3의 무게는 1.28㎏다. 4K 초고화질 동영상 카메라를 처음 장착했던 2.935㎏의 인스파이어 모델을 출시한 지 5개월 만에 무게와 가격을 모두 3분의 1로 줄였다. 사용법도 쉽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내장됐다. GPS 신호가 닿지 않는 실내에서는 센서가 작동해 충돌을 방지했다. 홈 버튼을 누르면 GPS 신호를 이용해 출발한 장소로 되돌아온다. 카메라 거치대에 모터를 달았다. 앵글을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다. 드론과 카메라 앵글을 각각 다른 사람이 조작하는 기능도 추가됐다. 성능에 비해 가격은 파격이다. 팬텀3 기본형 모델이 999달러(109만원)에 불과하다.

 dji는 1930년대 상용항공기 제작사 보잉사와 비교된다. dji 이전 민간 드론은 애호가들의 기호품에 불과했다. 그들은 드론 비즈니스 시장을 개척했다. 농산물 작황 탐지, 대기 연구, 광물 탐사, 인터넷 보급 기능까지 언제 어디에나 드론이 존재하는 드론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나오게 한 주인공이다.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 연구기관인 윈터그린은 2021년 세계 민간 드론 시장이 50억 달러(5조464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글로벌 벤처 캐피탈의 자금 흐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보잉사와 GE에서 시작해 퀄컴에 투자했던 자금이 지금은 드론 제조사로 향하고 있다. 롱테일 경제학, 메이커스(혁신 창업가) 등의 신조어를 창안한 크리스 앤더슨이 세운 드론 제조사 3D 로보틱스는 지난 2월 5000만 달러(546억원)의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영국 런던에서 지난 8일 열린 dji(大疆創新·다장촹신)사의 신형 드론인 ‘팬텀3’ 언론 발표회에 참석한 영상업계 관계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스마트폰으로 드론을 촬영하고 있다. 이날 발표회는 런던을 비롯해 뉴욕과 뮌헨에서 동시에 열렸다. [사진 dji]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지금 dji가 첫 외부 투자금 조달을 원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dji는 확인을 거부했지만 지난해 매출은 5억 달러(5500억원)로 추산된다. 2013년 매출액(1억3000만 달러) 대비 385% 성장했다. dji는 올해 매출 1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빌리언달러 클럽에 입성하는 첫 드론 제조사가 된다는 의미다.

 경쟁도 시작됐다. dji를 노린 경쟁사들이 중국 안팎에서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다. dji는 기술적 우위로 이들을 제압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dji가 보유한 수천만 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 데이터는 신생 업체가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미국의 군사용 드론 제조사들이 dji를 물리치고 민간 드론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dji는 콧방귀를 뀐다. “그들은 신형 모델 생산에 5~6년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5~6개월이면 충분하다”는 식이다. dji는 지금까지 5개월 주기로 혁신 제품을 출시해왔다.

 지난해 1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dji의 ‘팬텀2 비전’ 모델을 리뷰하면서 “5년 전 공상과학 영화의 소품이나 수퍼 스파이의 최첨단 감시 기기였을 물건”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이 모델은 구형에 불과하다. dji는 2014년 연말 우수 직원에게 대당 최소 6만3000달러인 테슬라 전기차 30대를 시상했다.

 홍콩과 대륙이 함께 키운 왕타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왼쪽)에게 dji 창업자 왕타오가 드론을 설명하고 있다.

홍콩특별행정구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은 지난해 5월 dji 창업자 왕타오(汪滔·35)를 만났다. 공무원 80여 명과 함께였다. 렁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왕타오를 “홍콩이 키워낸 젊은 과학기술 기업가”라고 평가하는 글을 올렸다.

 왕타오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선전(深?)으로 이주했다. 2006년 홍콩과기대를 졸업하고 201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왕타오는 로봇 제작에 심취했다. 리쩌상(李澤湘·54) 홍콩과기대 교수의 협조를 받아 창업의 꿈을 이뤘다. 렁 장관은 “우리는 늘 산·관·학 연구를 말하지만 왕타오는 선전시의 정책적 지원을 받았다”며 “홍콩은 우수한 DNA, 양호한 연구개발(R&D)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부족했다”고 개탄했다.

 렁 장관의 지적처럼 왕타오는 홍콩과기대 졸업 직후인 2006년 중국 선전으로 돌아가 드론 제조 기업을 세웠다. 10년도 되지 않아 몇 명이 만든 회사가 직원 2500명, 빌리언 달러 클럽을 넘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왕타오가 홍콩을 버리고 선전으로 간 주된 이유는 인재였다. 혁신 정보통신(IT) 기업은 인재를 필요로 한다. 홍콩은 인구가 적다. 사회 분위기 영향도 컸다. IT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재 유인책이 필요하다.

 2006년 홍콩과기대 석사생이던 왕타오는 파트너 몇몇과 선전에서 일반 주택을 빌려 R&D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5일 홍콩 명보 기자에게 “IT업은 인재 산업이다. 인재는 최고급 인재와 기초형 인재로 나뉜다. 둘의 이상적 비율은 대략 1대 5”라고 말했다. 왕타오가 생각하는 최고급 인재는 100명 중 한 명 비율로 나오는 공학박사 혹은 석사졸업생을 말한다. 기초형 인재는 10명 중 한 명꼴인 대졸 학력으로 실무 경력을 가진 공학도다. “제품 R&D에는 최고급 인재가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초형 인재가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왕타오의 지론이다.

 당시 왕타오는 선전을 창업지로 선택했다. 회사 초창기 홍콩의 비싼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왕타오는 “투자은행 같은 고소득 직장을 포기하라고 우수 인재를 설득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홍콩에서는 인재를 찾을 수 없었던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홍콩에서 가장 총명한 학생은 모두 법학·의학·금융을 전공한다. 과학기술·공학과 같이 최고급 인재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우수 학생을 찾을 수 없었다.” 왕타오의 말처럼 홍콩의 우수한 공대 졸업생은 많은 수가 전공을 바꿨다. “한편에서 그들은 IT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홍콩은 기초형 인재도 부족했다. 홍콩 출신이 홀로 창업하는 것도 무척 어렵다.” 왕타오의 동문 대다수는 금융·마케팅으로 진로를 바꿨거나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한국의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왕타오의 홍콩 비판은 계속된다. 홍콩에는 국제적으로 지명도 높은 대학이 있지만 현실 경험을 제공할 산업 체인과 혁신형 기업이 없다. “이 때문에 대학이 세계의 우수 학생을 유치하더라도 이들이 졸업 후 뿌리내릴 방법이 없다.” 선전은 정반대다. 대학의 교육 환경은 홍콩보다 뒤처진다. 대신 기업이 전국 각지의 우수한 인재를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13억 인구는 최고급 인재의 숫자를 보증하는 든든한 배경이다. 현재 선전의 가오신(高新)기술구에서 근무하는 직원 가운데 현지인 비율은 5% 미만이다. 하지만 중국의 모든 최우수 엔지니어가 한데 모여 선전의 확대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대신 홍콩은 깨끗하고 투명한 법제도를 갖췄다. 기업 기밀 유출이나 구매 리베이트와 같은 경영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결에 유리하다. 왕타오는 홍콩과 인접한 샤톈(沙田)과학원에 약 2000㎡ 넓이의 사무실을 확보해 홍콩과 선전의 장점을 모두 취했다.

 군웅굴기 … 드론 춘추전국시대

올해 1월 6~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국제 전자제품박람회(CES)가 열렸다. 가장 뜨거웠던 곳은 컨벤션센터 사우스홀의 16개 사가 모인 무인시스템 전시구역이었다. dji 팬텀 시리즈와 비슷한 쿼드콥터 혹은 헥사콥터가 주종을 이뤘다.

 드론은 올 CES의 총아였다. 중국 경제주간지 경제관찰보에 따르면 지난해 취임한 인텔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CES에서 줄곧 드론을 말했다. 전시기간 내내 직접 독일산 드론을 직접 전시했다. 장애물을 자동으로 피할 수 있는 인텔이 생산한 지능형 카메라를 장착한 제품이었다. 장애물 회피는 시판 중인 대부분의 드론이 풀어야 할 과제다. 크르자니크는 드론 닉시(Nixie)를 만든 크리스토프 코스탈과 함께 무대에 올라 휴대형 쿼드콥터 드론을 프레젠테이션했다. 평시에는 손잡이로 휴대하고 다니다가 촬영할 때에 손을 휘두르면 자동으로 날아가 촬영을 하는 제품이다.

 드론은 중국이 첨단 영역에서 더 이상 팔로어가 아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dji의 성공 신화는 중국 촹커(創客·혁신 제조업자) 군단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최근 드론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광저우(廣州)의 이항(億航)지능기술유한공사가 대표주자다.

 이항은 2014년 4월 설립됐다. 첫 투자 로드쇼에서 중국 온라인 교육업체인 신둥팡(新東方)의 창업자 중 한 명인 에인절투자자 쉬샤오핑(徐小平)과 벤처투자의 달인 양닝(楊寧)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창사 반년도 되지 않아 1000만 달러 규모의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4~5명이던 직원이 80명으로 늘었다. 이항 창업자 슝이팡(熊逸放·26)은 경제관찰보에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올해 말이면 기업가치가 10억 위안(약 18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항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구애도 받았다. 지난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6회 마이크로소프트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에서 입선했다. 베이징에서 6개월간 무료 사무실 이용권을 부상으로 받았다. 2015년 초 이항은 실리콘밸리에 미국 사무소를 개설했다. 이항의 주력 제품은 고스트(Ghost) 시리즈 쿼드콥터다. 조종이 무척 쉽다. 드론 시장의 ‘똑딱이 드론’으로 불린다. 이항은 중국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약 37만4000위안(약 6600만원)을 모금했다. 자신감이 생긴 슝이팡은 유명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에 고스트를 올렸다. 1월 9일 모금 마감액은 85만955달러(9억3000만원). 설정액의 786%를 달성했다.

 지난 2월 1일 선전의 키보드와 마우스 제조업체인 레이포커지(雷柏科技·Rapoo)는 선전 서커우(蛇口) 해상의 전시용 민스크 항공모함에서 드론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다. 베이징의 링두즈쿵(零度智控)과 손잡고 자이로(xiro) 시리즈 드론을 출시했다.

 저가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小米)도 드론시장에 뛰어들 기세다. 최근 플라이미(Fly-me)란 드론 개발팀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중국 IT업계에 돌았다. 샤오미는 초저가 드론으로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드론 춘추전국시대의 막이 올랐다는 의미다.

 최근 중국 시사지 ‘남도주간’은 ‘4차 비행혁명’이란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100여 년 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면서 1차 비행혁명이 시작됐다. 제트엔진이 보급되면서 인류는 지구상에서 물리적 거리가 사라지는 2차 비행혁명을 경험했다. 3차 혁명은 개인전용기의 보급이다. 4차는 드론이 이끌고 있다. 군사·엔지니어 영역에서 시작된 드론은 사진가와 방송관계자는 물론 매니어 층의 폭발적 호응을 받고 있다. 집단지성과 혁신, 인터넷 정신과 결합한 드론이 펼칠 4차 비행혁명이 인류를 어떤 신세계로 이끌지 아직 상상하기 이르다.

신경진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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