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떼일 염려 없는 담보대출만 골몰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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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 은행권은 어느 은행을 가릴 것 없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침체로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은행들의 실적이 좋아진 것과는 별개로 국민경제에는 도대체 기여한 것이 없다는 눈총이 따갑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2일 '금융경영인 포럼'에서 "금융권이 대기업이나 부동산 담보 위주로 돈을 빌려줘 경제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안전한 돈벌이에만 매달려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을 대주는 자금 중개기능은 외면해 왔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여유자금이 넘쳐나는 대기업에는 서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아우성이고, 당장은 위험성이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중견기업들은 돈을 못 구해 발을 구르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조금 돈이 된다 싶으면 한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이른바 '떼거리'영업 방식도 여전하다. 올해 부동산값 상승의 배후 요인으로 지목된 부동산담보대출이 대표적인 예다. 기업대출은 위험하니 가급적 피하고 돈 떼일 염려가 없는 담보대출에 너도나도 달려든 결과 과다대출.중복대출이 넘쳐났다. 결국 감독 당국의 경고를 받고서야 부동산대출의 열풍이 가라앉았다.

이래서는 은행권의 장기적인 발전은 물론 내년 이후의 안정적인 경영도 보장할 수 없다. 은행업은 본래 국민경제의 성장과 함께 커왔다. 경제 전체의 안정적인 성장 없이 은행업의 장기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은행권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새로운 금융상품이나 영업방식의 개발, 미래 성장산업의 발굴과 지원 같은 혁신적인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눈앞의 단기적인 이익만을 쫓아다니는 것이 오늘날 국내 은행들의 현주소다. 외환위기 이후 덩치가 커지고, 자본의 건전성은 높아졌지만 영업 행태는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경제에 대한 선도적 역할을 외면한 은행은 결국 고객과 주주들에게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