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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논의 왜 중단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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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감사원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지정된 문화재 지정 번호를 지금까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국보 1호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교체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발언을 했다. 유력한 국보 1호 후보로는 훈민정음이 거론되었다. 내년 초 문화재청에서 준비한 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면 국보에는 지정번호가 없어진다.

다만 관리하기 위한 번호가 있을 뿐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은 '대한민국 국보 숭례문'으로 명칭이 바뀌고 단지 관리번호로 숫자 1을 달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국보 1호 변경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 겨레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인 훈민정음이 국보 1호로 변경된 뒤, 내년에는 관리번호 1번이 주어져야 한다.

최근 민주당 손봉숙 의원실에서 서울.경기지역 중.고등학생 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숭례문이 왜 국보 1호인지 75%의 학생들은 모른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평가하는 '국보 1호'는 훈민정음이 6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한글의 우수성, 우리 고유의 글자라는 점, 한글창제 정신이 그 이유다. 이러한 국민의 정서를 정책이나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최근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있는 한글을 최고의 한류 마케팅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일본.중국.동남아의 한류 팬들에게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

한글을 소재로 한 제품이나 문화상품도 한류를 타고 크게 각광받고 있는 현실이다. 외국인 대상의 한글능력검정시험은 해마다 50%가량 늘고 있다.

서울 용산에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글실은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 외국인 방문객들은 한글의 생성원리를 설명한 해설문 앞에서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연방 사진기로 한글 자모 그림을 찍고 있었다. 신비로움과 미적 감각을 지닌 한글의 과학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1200조원 규모의 세계 문화콘텐트 시장을 공략한다면 우리 민족의 문화 저변을 알리고 콘텐트 수출과 관광산업을 획기적으로 비약시킬 수 있다. 훈민정음의 국보 1호 변경은 순풍에 돛 단 듯 한류 확산에 이바지할 것이다.

숭례문은 광복 후 문화재 정리과정에서 일제 때 붙여진 번호를 그대로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국보 1호가 됐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장이 서울에 입성한 것을 기념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반면 훈민정음은 언어소통에 불편을 느끼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세종 큰임금께서 민연정신을 바탕으로 창제한 것으로, 그 가치는 번호체계나 돈(예산)에 있지 않고 전 세계에 두루 혜택을 주는 홍익정신에 기초한다. 한글날이 14년 만에 다시 국경일로 승격되는 법률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와 함께 훈민정음도 국보 1호로 변경되어 우리 역사에 길이 남는 2005년이 되기를 국민과 함께 희망해 본다.

신승일 한글인터넷주소추진연합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