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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문제 해결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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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란은 아직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이란은 그동안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우리는 핵발전소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저농축 우라늄만 생산할 계획"이라고 말해 왔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고농축 우라늄(HEU)이 필요하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이란의 경우 모든 정치적 제재가 풀려 최대한 빨리 핵폭탄을 제조한다 해도 무기급 핵폭탄 1개 분량의 농축 우라늄을 생산해 내려면 최소 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단 핵무기 생산시설이 완성될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란의 핵무기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될 게 분명하다. 불과 며칠 만에 무기급 핵폭탄을 생산해 낼 수도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은 최근까지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EU 등 서방세계와 보조를 맞춰왔다. 이란도 정치적 고립과 경제 제재, 나아가 무력 공격을 피하기 위해 강대국들과 협력하려는 자세를 취해왔다. 2003년 10월 영국.프랑스.독일과의 합의에 따라 민감한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고, 핵농축 활동을 일시 중단한 게 대표적 사례다. 유럽 3국은 그동안 "이란이 계속해서 IAEA 사찰에 협력하는 등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책임지고 막아주겠다"며 이란을 설득해 왔다.

하지만 이란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영원히 포기하라"는 EU의 요구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EU는 이란 내에 유럽식 핵발전소 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핵연료 공급도 보장한다는 당근을 내놨지만 이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이란은 갈수록 거세지는 국제적 압력을 피하기 위해 핵개발을 잠깐 미루는 '전술적 양보'만 했을 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핵개발 자체는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여전히 확고해 보인다. 더욱이 이란은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갖고 있어 웬만한 경제 제재를 견뎌낼 능력이 있다. 또 가장 두려워하는 서방의 군사공격도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어 당장은 실행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다.

핵문제를 둘러싼 이러한 이란의 살라미 전술(카드를 조각조각 내 협상력을 최대한 올리는 방식)은 지금까지는 제법 성과를 거두고 있다. IAEA 이사회가 이란 핵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보류한 게 단적인 예다. 러시아의 반발이 결정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유엔 안보리는 거부권을 갖고 있는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하나라도 반대하면 안 된다. 러시아와 중국도 이란의 핵개발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란과 척지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이처럼 난감한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란에 핵개발을 중단하고 IAEA 사찰에 협력하도록 한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공조체제 유지가 급선무다. "우라늄 농축은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금지선)"이란 메시지도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1차 우라늄 변환 단계에서 '유엔 안보리 회부'라는 카드가 먹히지 않은 상태여서 마지막 저지선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물론 항구적인 해결책은 이란 행정부의 완전 교체나 미국 등 서방과의 포괄적인 관계개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당분간 제로에 가깝다.

개리 새모어 맥아더재단 부이사장

정리=박신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