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서강대교수·정치학)> 원칙이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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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원칙이 있어야 분별이 생긴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려면 판단할 근거로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마치 길고 짧은 것을 가리려면 자가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칙이 분명한 사람은 믿을수 있다. 행위선택에 있어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니고 있는 뚜렷한 원칙에 비추어 선명하게 일을 분별하여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 원칙이 설사 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라도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존경할수 있게 된다. 믿을수 있기 때문이다. 「통정된 인격을 갖춘 사람」(man of integrity)이라고 하면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간에도 서로 존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사람들은 누구나 믿을수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그 행위를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꺼린다. 변덕스러운 사람이란 표현이 인격적 모욕이 되는 것은 이런 이치 때문이다.
원칙이 뚜렷한 사람이라야 자기행위에 책임을 질줄 안다. 자기가 행한 행위의 의미를 스스로 알기 때문에 책임도 질수 있는 것이다. 무원칙의 사람들은 스스로도 자기가 한 행위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책임을 지려야 질 수도 없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약속>
여러가지 다른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고서는 하루도 편히살수 없다. 사회생활이란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사이의 약속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이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7시에 오기로 된 버스가 나타나지 않는다든가, 9시수업인데 선생이 오지 않는다든가, 도장과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면 맡긴돈 준다고 해 놓고 안준다거나, 돈을 주고 산 내집이 하루아침에 남의 집으로 둔갑한다면 살수 있겠는가? 그래서 서로 믿고 살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라고 우리들은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지어 가르치고, 나라일 맡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제일 소중히 여겨야 할 일이 백성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는 일(공자님말씀)이라고들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서로 믿고 사는 나라」라는 믿음의 척도로 재본다면 얼마나 좋은 나라라고할수 있을까? 정확히 재볼수 있는 무슨 지수같은 것이 없어 느낌으로만 이야기한다면 분명히 발전보다는 퇴보를 해왔다고 말할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어렸을 때보다 사기범도 훨씬 많아졌고, 친구간의 신의도 얇아졌으며, 학생과 선생간의 믿음도 예같지 않고, 물건파는 상인도 더 믿을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나라일에 대한 믿음도 훨씬 떨어졌다.
옛날에는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경찰이라면 우리를 범죄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어도 좋았지만 이제는 경찰도 가려서 믿어야할 세상이 되었다. 전에는 아이들에게 어른 말씀 잘 들으라고 타일렀던 부모들이 요즘엔 낯선 어른들을 조심하라고 일러 길에 내보내고 있다.
나라가 정한 법, 정부가 세운 정책이라면 하늘같이 우러러보고 따르던 백성들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다. 왜 이렇게 못 믿게 되었을까? 원칙이 뚜렷하게 서지 않은 상황에서 법과 정책을 마구 쏟아 놓았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원칙아래 행위의 일관성이 있을 수 없고, 일관성없는 정부정책을 지키다보면 나라일에 대한 믿음의 체계가 흔들리게 되고 불신이 상식으로 되는 것이다.

<왜 못믿게 되었나>
한 옛 정치학자가 이르기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을 물어가는 범이 아니라 믿을수 없는 정부」라고 했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모든 권력을 쥐고 있으며 개인의 일상생활, 어느 구석이고 다 영향을 미칠수 있는 힘을 가진 정부가 하는 일이 백성들이 믿을 수 없는 변덕스러운 것이라면 이하늘아래 어디가서 마음펴고 하루라도 살아갈수 있겠는가? 그런 뜻에서 그 학자의 말에 공감한다.
반공을 국시로 삼아 이에 어긋나면 모두 잡아넣던 때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지금도 학교에서는 반공을 소리높여 가르치고 있는데, 서울에서 중공기는 나부껴도 좋고 반공우방인 중화민국기는 내걸면 안된다고 하니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비행기로 북한을 탈출한 조종사는 반공투사이고 중공민항기로 귀순한 사람들은 범법자로 감옥에 가두고,우리를 해치려고 다대포에 상륙한 무장간첩중에서 죽은자는 죄인이고 사로잡힌자는 하루아침에 애국자가 되니 무엇이 원칙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나라사이의 관계도 개인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적국이든 우방이든 원칙에 따라 의연하게 일을 처리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존경이 가고 믿음을 주고 싶으나 원칙없이, 신의 없이 마구 움직이는 나라는 아무리 우방이어도 곁을 주고싶지않게 되는 법이다. 우리가 국교도 없는 중공의 관리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서울에 중공기를 걸어주는 짝사랑을 바친다고 중공이 우리를 높이 볼까? 아마도 그들은 한국을 믿을 수 없는 경박한 나라라고 깔볼 것이다. 세상사정은 바뀐다. 한 시대의 원칙을 바뀐 새세상에서도 고집스럽게 우기라고 하는 얘기는아니다.
원칙을 바꿀때가 되면 심사숙고해서 이를 선언하면 된다. 옛원칙을 대신하는 새원칙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원칙변경은 무원칙과 전혀 다르다.
개인의 행동에서 원칙이 무너지면 우리는 인격파탄자로 여기고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다.
집안에서 기강이 무너지면 패가하게 된다.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영이 서릿발처럼 서고, 법이 칼날같이 살아있고 기강이 바로잡혀 있어야 질서가 서고, 질서가 잡혀야 사람들은 나라도 믿고 남도 믿고 편히 살 수 있게 된다.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면 그것은 이미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다.

<기강 안서면 패가>
세상이 어지러울 때일 수록 원칙에 따르는 행동을 해야 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원칙에 따르라는 옛 성현의 말을 빌 것도 없이 혼란을 막는 길은 원칙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하찮은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원칙을 세우고 이를 살려나가는 일을시작하여 이 나라의 안팎에 믿음을 되찾아주는 일,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손자들이 살때쯤까지는 「서로 믿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만들어 물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주일부터 「세류청론」을 맡을 필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철수<서울대·헌법학>
▲김 현<서울대·불문학>
▲이상우<서강대·정치학>
▲정신영<연세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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