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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추모 거부당한 대통령과 국무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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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월호 1주기 추모를 위해 팽목항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했다. 16일 오전에야 알려진 대통령의 방문 소식에 가족들은 분향소를 폐쇄하고, 정부를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만 걸어놓은 채 팽목항을 떠났다. 대통령은 빈 팽목항 방파제 위에서 대국민 발표문만 읽었다. 이에 앞서 이완구 국무총리도 오전에 안산 분향소를 찾았다가 유족들의 거부로 조문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박 대통령의 팽목항행은 세월호를 둘러싼 갈등을 진정시키는 어떤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선체를 가능한 빨리 인양하고,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4·16 가족협의회는 담화문 발표 직후 이날 오후 2시 안산에서 열기로 했던 추모식까지 취소하면서 “대통령 담화내용은 하나 마나 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추모조차 거부당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보는 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박 대통령은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음에도 타이밍을 잃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1주기를 앞두고도 “대통령은 민간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등 의전에 얽매여 갈팡질팡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대통령이 며칠 전에라도 “나는 그날 팽목항에 있을 것이다”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정신의학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부정·분노·타협·절망의 과정을 거쳐 수용하게 되는데, 수용의 단계에 이르려면 충분히 애도하고 위로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학적 위로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진심으로 슬픔에 공감해주는 것이다. 요즘 일각에선 ‘세월호 피로감’ 경향도 나타난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여전히 분노 속에 사는 건 나라가 충분히 그 슬픔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기 때문일 거다. 대통령이 이번 남미 순방길의 긴 시간 동안 ‘팽목항의 냉대’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귀 기울여주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그리고 이젠 유가족들도 평정심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치유되는 길을 찾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