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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1년 …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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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월호 1년. 이 순간 가장 참담한 것은 ‘통한의 반성문’밖에 쓸 게 없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에도 이미 무능하고, 병들어 있었다. 생명이 없는 돈을 위해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버리는 업자, 집단 이익을 챙기며 공공의 이익은 외면한 관료, 무사안일에 빠진 정부, 리더십의 부재…. 우리 사회의 도덕지수는 최악이었다. 총체적으로 무능한 국가는 비스듬히 기운 상태에서 서해안을 떠다니던 ‘세월호’의 침몰을 막을 수 없었고, 304명의 생명을 수장(水葬)시키고 말았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불행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외면했던 적폐(積弊)를 직시하게 됐다. 기대 이하인 국가의 실력과 수준을 목도하며, 정부·정치권·국민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장하게 ‘국가개조’를 약속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주문을 남겼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이 과제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을까. 본지가 세월호 1년을 맞아 실시한 ‘국민 안전의식’ 여론조사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시민 10명 중 6.5명이 ‘안전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수습책으로 국가조직 개편, 관피아 철폐 등 10대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해경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고, 세월호 3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기에 전문가들이 매긴 점수는 평균 58.8점이다. 낙제점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더십은 행정부 조직만 바꿨을 뿐, 무능과 타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눈물 속에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잊지 않겠다던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족들에게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의 말은 빈말이 됐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세월호를 이용했고, 때로는 희생자들을 적대시하며 갈등을 부추겼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정치인들의 경박함이 릴레이하듯 이어졌다.

 형편없이 낮은 시민의식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감과 배려로 아픔을 치유하고 집단적 기억으로 승화시키려는 성숙한 의식이 부족했다. 물론 많은 자원봉사자가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도왔고, 함께 슬퍼하긴 했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과 리더십의 부재 속에 보낸 불신의 1년 동안 사회는 분열됐다. 단식하는 유족 앞에서 피자 파티를 열고, 유족을 희롱하고, 돈을 뜯어내려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비상식이 판을 쳤다. 또 일부는 증오심을 부추기는 선동에 가담했다.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은 낮았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으로서의 정의(justice)를 ‘공감(sympathy)’이라고 했다. 공감은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자기 일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개인의 삶에서든 공적 활동에서든 아무리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할 때라도,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판단이 발휘돼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게 진정한 시민정신이다. 지난 1년의 혼란과 갈등에는 시민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앞으로 1년 후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까. 지금 상태론 난망(難望)이다. 집권 세력은 이미 ‘세월호 망각’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남미 순방을 떠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미 미국으로 떠났다. 다른 관계 부처 장관들도 해외 출장이나 국회 일정 등으로 대부분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오늘 ‘제1회 국민안전의 날 국민안전 다짐대회’라는 행사를 치른다. 경찰은 유족과 시민들이 연다는 추모집회에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미리 엄포를 놓았다. 정부가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으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신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으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슬픔에 공감하고, 충분히 애도하고, 함께 치유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미래지향적 노력으로 극복하고 승화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 우리 사회는 ‘세월호’에 대해 진정으로 잘못했다. 이런 잘못을 반성하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채근할 수 있는 세력은 시민이다.

 우리는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국가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러기에 탐욕의 절제라는 교양을 갖추고,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책임 있는 시민을 키우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시민 없는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든 부조리와 적폐를 근본적으로 씻어낼 수 있다. 70년 전 광복과 더불어 미국에 의해 주어진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존재가 절실하다. ‘공짜 민주주의’로는 세월호의 비극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1년 전의 참극이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엄중한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