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 후의 해운업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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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운사 통폐합작업이 매듭지어진 것으로 발표되었다. 지난 반년동안 진통을 거듭해온 이 어려운 작업은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 현단계로서는 행정적 차원의 매듭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운업계의 대폭적인 개편은 그 절실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업계 자체의 산적한 문제들로 인해 당초부터 순탄한 자발적 개편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더우기 이 작업을 관이 주도하는 과정에서 관료적 실속주의가 앞서는 바람에 시한에 쫓김으로써 업계가 안고 있는 누적된 병폐의 핵심을 해결하기 보다는 물리적 통폐합자체에 더 주안이 두어지는 결과를 빚어 냈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 통폐합은 비록 외형적으로 53사 16개 그룹으로 매듭지어 졌지만 이는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는 임시방편의 줄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 가장 큰 반증의 하나는 업계의 자발적인 계획으로 제출된 각사의자산·부채등 재무구조나 손익·영업관계 자료들이 얼마나 신뢰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둘인가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작업에 참여해온 관계 당국자글의 눈에도 앞뒤가 안맞고 믿을 수 없는 수치들이 가득찬 자료를 토대로 통폐합을 매듭 짓는다면 그것은 해운업계의 정상화·합리화라는 통폐합 자체의 목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더우기 이를 근거로 국민의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온당치 못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싯점에서 필요한 것은 행정의 실적에 급급한 외형적 정리가 아니라 해운업계가 안고 있렀던 구조적 부조리와 경영의 난맥상을 근원적으로 수술하는 구조개편이 돼야하는 것이다.
왜 이들 회사의 제출자료들이 부실하고 믿을 수 없게 되었는지를 정밀분석하고 경영·자금 운영상의 근원적 문제나 해외금융·해외지점과 대리점들의 자금운용 실태를 철저히 추적 조사함으로써 경영부실을 초래한 본원적 요인들을 밝혀내지 않는 한 통폐합 이후의 경영개선은 쉽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통폐합 이후의 경영합리화를 위한 지원방안으로 시설자금의 기한연장과 각종 조선자금지원, 등록·취득세등 각종 조세의 감면과 행정지원등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국민의 부담으로 이루어지는 조세·금융·행정의 어떤 지원도, 해운업계의 진정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향후의 사전방지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 한 결코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이번 통폐합은 지금부터가 합리화의 시발점이 되어야 하며 결코 매듭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관련부처와 금융기관들이 합동으로 철저한 실태조사와 분석을 실시하고 부실운영의 제도적 방지를 위한 확실한 대응책을 만드는 것이 일의 순서가 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나 선복량과 물동량의 확보등은 그 다음의 문제임을 특히 지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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