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란에 MD 수출" … 미국 "핵 협상력 떨어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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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러시아 첨단 방공 미사일의 이란 수출을 두고 전략 게임이 벌어졌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의 중동판이다. 러시아·미국이 팽팽하다. 중국은 이 와중에 러시아제 최첨단 방공 미사일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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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제 첨단 방공 미사일 시스템의 이란 수출 금지령을 해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는 양국 사이 오랜 ‘현안’이었다. 러시아는 2007년 S-300 5기(8억 달러 규모)를 이란에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이 무기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을 막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두 나라의 강력한 반발을 감안, 무기 인도를 미뤘다. 그러다 2010년 유엔이 대(對) 이란 무기 금수 결의안을 채택하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대통령령으로 금수 조치를 취했다. S-300은 유엔의 금수 품목은 아니었지만 서방과의 관계를 중시한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5년 만에 이를 되돌렸다. 이달 초 이란 핵 잠정합의가 이뤄진 데 따른 결정이란 주장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핵협상 진전에 따라 러시아가 이란에 미사일 수출을 금지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며 “순전히 방어용 무기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지역의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대(對) 러시아 제재에 대한 ‘반격’이란 해석도 있다. 한 전문가는 “대 이란 제재 때 자발적으로 동조했는데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우리도 더 이상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게 푸틴의 메시지일 수 있다”(파이낸셜타임스)라고 말했다. 이란이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인 게 러시아에겐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라브로프 장관은 “불안한 중동 정세를 감안하면 이란도 현대적 방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감쌌다. 또 무기 수출이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 압박을 완화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서방은 펄쩍 뛰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우려를 표명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이 같은 소식을 전하곤 “러시아의 이 같은 행보는 이란 핵협상의 결과로 대 이란 제재를 해제한다는 (주요국들의) 계획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의 뜻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미국의 대러 관계가 악화할 뿐 아니라 이란 핵 협상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으로선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을 덜 겁내게 될 수도 있어서다. 이란과 패권 경쟁 중인 수니파 국가들의 공포를 키워, 중동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협상에 냉소적인 의회를 설득하기 더욱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러시아가 미사일을 바로 수출할지, 수출하더라도 어떤 기종을 제공할지는 미지수다. 브렌다 새퍼 조지타운대 교수는 “러시아가 최소 6차례 수출하겠다고 해놓고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현재 S-300은 거의 해체됐고 S-400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다.

 한편 러시아 국영무기수출업체 ‘로스오보론엑스포르트’의 아나톨리 이사이킨 사장은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나라가 구매를 원하고 있지만 중국이 처음으로 S-400 미사일을 구매했다”며 “이는 양국 협력의 전략적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구체적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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