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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잃어버린 36년<제자·일중 김충현>|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KUTV 스파이 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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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제하에서 소리없이 죽어간 한국인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조선군사령부의 문서속에는 죽음의 사연이 있을뿐 그 처리는 알수없는 기록들이 적잖게 있다. 그 가운데 모스크바의 동방노역자공산대학(KUTV) 군사스파이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KUTV스파이 사건이란 KUTV출신 한국인이 군사첩보수집사명을 띠고 국내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사건에 붙인 이름이다.
37년1월에 작성된 조선군사령부의 극비보고서는 소련이 일·소전쟁의 가능성에 대비해 1933년 이래 KUTV의 본과와 속성과에 군사학을 신설, 정보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쓰고 이같은 사태는 조선내의 방첩활동에 특별한 경계를 요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KUTV는 1921년 4윌에 창설되었다. 초기목적은 이름 그대로 한국·중국·인도 등 동방제국의 공산당간부 양성이었으나 곧바로 중동지역 대표에까지 문호을 넒혔다.
그러다 23년엔 소비에트부와 재외부로 나누어 소비에트부는 소련인을, 재외부는 외국인 교육을 맡도록 했다. 이 학교의 교장은 코민테른 간부였던 인도인 초대교장을 예외로 하곤 줄곧 소련공산당 간부가 맡았다.

<박헌영 등도 유학>
이 대학은 원칙적으로 코민테른에 가입된 나라의 공산당에서 추천하는 청년요원을 받아들였으며 학력엔 제한이 없었다.
조선공산당의 추천 제1호는 고려공산청년회가 26년 파견한 21명의 유학생이다. 조봉암 박헌영 등은 25년 서울에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를 창설하고 그해11윌 모스크바로 간 조봉암이 고려공산청년회의 콤소몰 가입을 승인받고 KUTV로부터 유학생파견을 승인받았었다.
그이후 조선공산당은 내부의 격심한 파쟁과 일본경찰의 추적에 쫓기면서도 4차당까지 코민테른조선지부로 기능했고 해마다 KUTV에 20명선의 유학생을 파견했다.
KUTV유학생에게는 여비와 학비를 소련공산당에서 지급했다. 학생은 전원 기숙사에 수용했으며 재학기간은 외부와 전화도 금지되는 철저한 밀봉이었다.
이 대학의 러시아인 생도는 소위 러시아공산당 KUTV 지부를 조직해 활동했으며 타국인은 엄격한 심사후에만 입당을 허용했는데 조선인 유학생에 대해서는 조선공산당의 파벌항쟁이 격심하다는 이유로 단 1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학엔 4년제의 본과와 3년제의 별과가 있었는데 본과는 러시아인만에 한정됐고 외국인은 모두 별과에 두어 단기교육을 실시했다. 외국인은 첫 1년은 소련어를 중점 지도하고 후반 2년에 소위 공산당 간부요원으로서 필요한 정치교육을 받았다. 이들 학생들은 졸업후엔 그들을 파견한 지역에 돌아가 공산당 혹은 공산청년회원으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할 것을 서약하도록 했다.
별과는 원칙적으로 3년이었으나 케이스별로 2년이내로 단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졸업후엔 소련공산당이 지정하는 공장에 취업, 노동기술을 배우고 근로자와 생활하면서 소련의 공산당조직활동을 실습해야했다. 그런뒤 그들은 다시 KUTV로 소환되어 활동지침을 시달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일본당국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공산당이 해체된 28년이후에는 소련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개별적인 입학자가 있었을뿐 유학생은 끊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KUTV가 첩보요원 양성을 겸한 33년이후부터 한국인을 받아들였는데 이들 후기케이스는 1∼2년의 단기훈련후 군사스파이로 내보내는 케이스였다고 한다.

<철저한 밀봉교육>
조선군사령부는 37년 KUTV스파이로 잠입한 2명의 한국인을 체포함으로써 KUTV의 스파이부 내막이 최초로 포착되었다고 기록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체포된 최초의 KUTV 스파이는 이한빈(32세·러시아명 호엔) 이경호(40세·러시아명 페츠도나) 등 2명. 함경남도신흥군가평면 출신인 이들 둘은 역시 동향인인 이도진(39세·러시아명 찌요이·민)과 함께 26년이래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KUTV에 관해 알게되고 28년 그곳에 유학할 뜻을 갖고 공산당간부와 접촉했다. 그러나 그시기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승인이 취소되어 유학의 뜻을 이룰수 없었다. 이들 3명은 KUTV입학을 위해 29년6윌 소련밀행을 결행했다.
이들은 경흥에서 만주를 거쳐 러시아령에 들어갔으나 곧바로 소련 게페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추방당했다. 이들은 다시 모스크바행을 모색, 해외파 고려공산당 창당주역이자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에게 도움을 청하기위해 30년7월 만주의 신한촌을 찾아갔다. 신한촌에서도 KUTV추천은 불가능하다면서 다만 모스크바로 가는 길만은 주선해주어 31년1월 모스크바에 들어갈수 있었다.
이들은 모스크바에서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얻고 현지의 조선인 구락부를 통해 KUTV 입학을 신청했다.
KUTV에선 그들의 입학신청을 묵살했다. 그러던것이 33년에야 KUTV의 호출을 받아 입학심사를 받게되어 그해11윌 입학이 허용되었다.
그들은 KUTV 속성과로 보내졌으며 종래의 교과와는 달리 그때 막 신설된 군사정보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KUTV의 군사학강좌는 제13회 코민테른 확대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에 기초해 실시되었으며 교관은 소련군 대령을 책임자로하는 첩보요원들이 맡았다.
교관은 군사학강좌의 첫머리에서 『만주사변이 일어날 초기까지도 만주지역의 한국인 항일운동은 규모가 컸으나 이들에게 군사상의 지식이 없었기때문에 성과를 거두지못한채 괴멸되었다』고 평가하고 그런 실패를 반복치 않기위해 조선인은 군사학을 익혀야한다고 했다. 말은 군사학이었지만 교육내용은 스파이 훈련이었다.
△각국의 군대편성상황 △비행기·탱크·장갑차·독가스·각종총포 △전시하의 통신기관 및 기자재의 종류와 성능 △군수품 제조와 군수공장의 민간공장 이용 △군사품의 수송수단 등을 파악, 조사하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또한 군대내 반전사상의 고취요령도 교육받았다. 특히 한국인에 대해서는 조선은 일·소 개전의 경우 지리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조선내 일본군 현장의 파악외에 군수공장과 기타 군수산업관련공장의 노동자를 포섭, 필요시의 제네스트 준비, 부두와 정거장노무자를 포섭, 군수품 수송방해를 시도하고 필요할때는 철도폭파도 감행할것. 통신부문에 침투, 통신내용을 정탐하고 사태가 급박할때는 전신·전화선을 절단, 통신기능을 파괴할 것 등의 지령과 함께 이를 위한 특별훈련이 추가되었다.

<31년 모스크바도착>
이한빈 등은 처음 3명이 함께 입학했으나 이도진은 성적불량으로 도중에서 퇴교당해 철공소노무자로 보내지고 이한빈·이경호 둘만 KUTV과정을 마쳤다.
이들은 34년5월에 교육이 끝나고 소련당국이 지정하는 휴양소로 보내졌다가 34년10월 KUTV비밀군사부에 소환되어 조선에 침투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이한빈은 평양, 이경호는 서울부근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라고 지령했다.
국내 활동에선 청년들을 KUTV 유학알선 명목을붙여 포섭하고 수집된 군사정보는 이들편으로 모스크바로 밀송하라고 지령했다. 두사람에게 지령된 내용은 비슷했다.
△조선군 사령부의 동향, 특히 대소전준비상황 △조선내 비행대, 특히 비행기종과 댓수· 비행장교의 기술수준 △조선내 군대의 부대편성과 이동상황 △군수품 제조공장과 발전소상황 등을 중점조사하라고 했다. 이한빈에게는 군사첩보수집 임무만을 준 반면 이경호에게는 군대·군수공장·기타 수송기관 근로자 포섭에 역점을 두도록 지령했다.
이한빈은 34년10월하순 모스크바를 출발, 11월 평양에 닿았다. 평양에선 일신여관에 기숙했는데 여관에서 알게되어 포섭대상자로 지목했던 청년이 그의 공작금을 훔쳐 도망가는 바람에 활동에 차질이 생겼다.
그는 공작금을 마련키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농토를 팔아 공작금을 마련키 위해 이듬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보다 한발 늦게 국내에 잠입한 이경호도 때마침 고향에 들르게되어 둘은 만났다.

<스파이로 총살된듯>
이때부터 둘은 함께 첩보공작에 나섰다. 이들은 북한지역을 분담해 군사정보를 수집했다. 이경호는 흥남지역 정보수집을 끝낸 뒤 장진강수력전기전선 가실공사에 취업, 김용전·박수복을 KUTV유학추천 게이스로 포섭해 모스크바로 보냈다.
이한빈은 본래의 지령과는 달리 함경북도를 거점으로 활동했다. 이때문에 그는 36년 여름에는 KUTV의 군사부로부터 평양에서 활동하라는 지령을 어긴데 대해 경고를 받기도했다. 조선군사령부의 문서는 37년 이들을 체포, 심문한것만이 기록되어 있을뿐 재판기록은 없다. 이들은 전시하 군사스파이로서 총살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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