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1994년②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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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94년 5월의 어느 저녁-.
중앙 박물관의 야간 공개 날이다. 낮에는 일에 매달렸던 사람들, 또 밤이 주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미술품을 보고싶어하는 애호인들, 화사한 박물관식당 에서의 데이트를 즐기려는 남녀들로 전시실은 가득해졌다. 요즘은 외국 관광객까지도 저녁 공개시간에 맞춰 몰려드는 바람에 박물관 공개시간을 변경해야 한다는 소리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뜰에서는 초여름의 저녁을 장식하는 음악회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매달 한 두 차례 개최되는 모임인데도 유독 5월의 음악회는 초가을의 모임만큼 더욱 풍성하다. 정상급 음악인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철거냐, 존속이냐 이론도 분분하던 본관 건물은 하나의 역사적 유물로 인정하게 되었다. 옛일은 용서하자. 그러나 쓰라린 과거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역사부의 전시실에는 20세기의 한반도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것이 우리국민의 순화된 마음인 것이다.
평소시간 같으면 차단될 지하철의 박물관출구가 이방만은 활짝 열려 발길이 분주하다.
전국 박물관장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 중 더러는 시내에 나가고 더러는 박물관 객원연구원의 숙소로 자리를 옮겨 크고 작은 요구사항이나 불평이 애교 있게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 근래에 출토되어 서울에서 전시중인 고구려시대 유물의 대여 경쟁 때문에 결국 복제품 제작에 대한 계획이 다시 구체화되자 이번에는 희소가치를 상실하는 전시품은 매력이 감소된다는 의견이 또 다시 나와 엉뚱한 방향으로 얘기가 흘러가 버렸다. 아마도 순회 전시에 대한 일정등이 거론되면서 중게 재안이 나오게 될 것이다.
뒤뜰에서는 2001년을 목표로 한 새 미술관 건립공사가 시작 됐다.
노장연구관들의 평생의 한이기도 한 5천년 역사를 담을 새 미술관은 10년쯤 걸려 완성, 길이 남을 명작이 돼야 한다는 공사의 기본지침이다.
그동안 하나하나 박물관의 큐레이터, 관계학자의 자문을 받아가며 조사정리가 끝난 소장자료는 이제 컴퓨터에 수록이 끝났다. 따라서 조그마한 단서가 하나만 있으면 원하는 자료의 정확한 명칭·출토지·크기는 물론 전시경력·관계 출판물에 대한 모든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서 오히려 찾던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믿어도 좋으냐고 눈이 둥그래지자 사진까지 제꺽 대령한다.
이렇게 컴퓨터에 의지하게 되자 정작 보물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게 됐다고 걱정하게 되었다. 자연 컴퓨터에 수록하기 위한 기초조사 부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큐레이터가 늘어나고 이래저래 큐레이터의 스카웃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각 박물관장의 눈치작전이 치열해지고 그 바람은 외국 박물관에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
연구기금은 그 소비실적이 줄어들어 요새 사람들은 공부 안 해서 큰일이라며 한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참고서적 한권 마음대로 사보지 못하던 10년 전에 비해 참으로 격세지감이 들어 믿지도 않으려 한다. 구 세대들은-. 이난영(국립중앙박물관미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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