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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유력인사는 1대 1로 만나 … 반드시 기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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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발인식이 13일 충남 서산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성 전 회장은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에 있는 부모 묘소 옆에 묻혔다. [뉴시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비망록이 발견됨에 따라 그의 스타일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인과 측근들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한번 만난 사람을 절대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했다. ‘사람 욕심’이 많아 누군가를 자신의 편으로 삼기 위해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특히 세상 모든 일을 ‘인간관계’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에 따라 권력의 핵심 인사들과의 만남에 공을 들였고 그 기록은 상세하게 정리했다.

 성 전 회장은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 인사들을 만날 때는 수행비서를 대동하지 않은 ‘일대일’ 만남을 선호했다. 한 지인은 “성 전 회장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만남에선 본인이 상대방을 직접 영접하고 ‘모시는’ 스타일”이라며 “그래야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수행비서들조차 성 전 회장이 알려주기 전에는 누구와 만나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과의 만남에 관한 기록을 철저하게 남긴 것은 그들과 쌓는 교분을 큰 자산으로 봤기 때문이다. 만남 전후 측근에게 말해 다이어리에 기재하거나 본인이 직접 적어 넣었다. 한 측근은 “모임 전후에 항상 누구를 만났고 어디에서 만났는지 기록을 남겼다”며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사업을 하면서 생긴 습관 같았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은 정치자금도 손수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어느 장소까지만 가져오라고 한 뒤 직접 받아 전달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성 전 회장이 전달한 구체적인 액수와 내역을 아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실제로 경향신문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성 전 회장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직접 만나 10만 달러를 전했다고 말했다. 돈을 준 장소(롯데호텔 헬스클럽), 시기(2006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벨기에 방문 때), 전달 방법 등을 상세하게 전했다.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 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을 찾아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이 9년 전 신문에 게재된 사진까지 거론한 것을 보면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당시 허태열 의원을 만났다고 밝힌 리베라 호텔도 실제로 당시 친박 정치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장소였다. 이렇게 구체적인 언급들은 모두 성 전 회장 자신의 비망록 기록에 의존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자신이 준 1억원을 홍준표 경남 지사에게 전달했다고 지목한 윤모씨를 최근 만나 전달 여부를 재차 확인한 것도 이런 특유의 철저함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신이 직접 전달하지 않은 자금에 대해 행여 ‘배달사고’가 발생했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했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정·관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마당발 인맥’을 구축해 왔다. 2000년 그가 주도해 만든 충청 출신 정·관·언론계 인사들의 모임인 충청포럼은 회원이 3500여 명에 달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정운찬 전 총리도 명예회원이다. 성 전 회장은 꼭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선물 공세를 폈다고 한다.

한 전직 정부 고위 인사는 “과거 아는 사람이 ‘성완종씨가 무슨 물건을 보낼 것’이라고 해 나중에 보니 성 전 회장이 보낸 사람이라면서 선물 꾸러미를 가져왔다. 호통을 쳐 돌려보낸 일이 있다”고 했다.

성 전 회장의 한 지인은 “그가 죽기 전 쪽지에 쓴 8명의 리스트는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라며 “오히려 살생부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경남기업의 한 핵심 임원은 “회장이 남긴 메모 내용은 내가 판단했을 때 모두 맞다”며 “검찰 수사와 관련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책회의를 할 때 ‘억울함’을 호소하며 비슷한 말씀을 여러 차례 했다”고 말했다.

이가영·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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