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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 아버지 박헌영 … 자료 모으는 건 내 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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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2일 평택 만기사에서 만난 원경 스님. 뒤편으로 『경성아리랑』 속 주인공을 그린 그림이 보인다. “천도하라”는 의미로 뒀다고 한다. [강정현 기자]

아들은 지난 21년간 아버지의 흔적을 그러모았다. 한국에 있는 도서관을 다 섭렵했다. 미국과 러시아도 다녀왔다. 그 중간 결과가 9권 분량의 『이정 박헌영 전집』 .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를 다시 만화책으로 만들었다.

 올해 출간된 『경성아리랑-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항일운동가 이야기』(플러스예감)는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현재 4권까지 나왔고, 올해 6권 완간 예정이다. 주인공은 박헌영(1900~56년). 항일운동을 하다 1946년 남로당을 창당했고, 미 군정에 쫓겨 월북한 뒤 내각 부수상에 올랐지만 ‘미제 스파이’라는 혐의로 김일성에게 처형당했다.

 책 발간을 주도한 이는 원경 스님(74)이다. 박헌영이 월북 전 남한에 남긴 유일한 혈육으로, 박헌영의 둘째 부인 정순년씨가 낳은 아들이다. 10대 때 불가에 귀의한 이래 지난해 조계종 원로의원에 선출됐고, 올 1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그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즘 사람들, 청소년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어 만화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료 수집과 정리에는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사학),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유학생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그림은 『만화로 보는 오세암』을 그린 만화가 유병윤(47)씨가 맡았다. 만화가 박재동씨가 원경 스님에게 추천했다. 유씨는 “역사문제연구소의 여러 교수들이 ‘20년대는 어떤 신발을 신었나’까지 철저하게 감수하는 데다 중간에 새로운 자료가 발굴돼 그리는 데만 9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북한 내각 부수상 겸 외무상이었던 40대 후반의 박헌영. 1949년 평양에서 찍은 사진이다. [중앙포토]

 박헌영은 여전히 한국에선 ‘남로당의 괴수’이자 ‘6·25 전쟁의 전범’이다. 그래서인지 책도 그의 항일운동을 중심으로 다뤘다. 북한으로 넘어간 이후는 출간 계획이 아직 없다고 한다. 원경 스님은 “광복 이후부턴 이데올로기 문제가 대두되니 조심스러워서 놔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사실 북한으로 간 이후를 다룰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제목도 ‘경성판타지’라고 할까 생각했다. 남북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광복이 결국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잖나. 하지만 항일운동사와 달리 북한으로 간 이후는 자료가 희박하다.”

 부친의 삶을 미화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올 법하다. 원경 스님의 답은 이랬다. “미화하고픈 생각은 손톱만치도 없다. 역사는 역사니까. 평가는 학자와 독자가 하는 거다.”

 그는 7월 19일 이전까지 발간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날이 부친의 기일이어서다. 원경 스님의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여운형 선생이 7월 19일에 저격당했고, 9년 후 같은 날 부친이 김일성에게 처형당했다. 다시 9년 후 이승만 대통령이 7월 19일에 서거했다. 세 사람의 제삿날이 같다.”

 원경 스님은 “성공한 혁명가라면 연구자들이 하지 말래도 연구했을 텐데, 부친을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그러졌던 역사 속에서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간 분이다. 그래도 나를 이 세상에 숨쉬게 해주신 분인데, 씨앗을 남겨놓으신 분인데,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자료를 모아놓는 게, 내 의무 같다.”

글=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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