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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폭탄은 누가 맞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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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올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13월 세금폭탄’의 전모가 드러났다. 지난 7일 기획재정부가 연말정산 대상자 1619만 명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판이하다. 우선 소득세법 개정(소득공제→세액공제) 때문에 세금이 준 사람은 827만 명, 증가한 사람은 407만 명이다. 나머지는 세금을 아예 안 내기 때문에 변동이 없다. 그동안 언론에선 세금폭탄이라고 대서특필했는데 알고 보니 세금이 준 사람이 는 사람보다 두 배나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금폭탄은 사실무근인가. 그렇진 않다. 소득구간별 분석을 보면 세금폭탄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근로소득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연소득 5500만원 이하(1361만 명)에선 세금이 평균 3만원이 줄었다. 5500만~7000만원 구간(114만 명)은 세금이 평균 3000원 늘었다. 그런데 7000만원 초과자(144만 명)는 세금이 무려 평균 109만원이나 늘었다. 소득세법 개정 효과로 늘어난 세수가 총 1조1461억원인데 7000만원 초과 그룹에서만 1조5710억원을 더 걷었다. 7000만원 초과자는 소득 상위 8.9% 이내에 드는 사람들이다.

 요컨대 세금폭탄은 융단폭격처럼 마구 투하된 게 아니라 고소득층을 겨냥해 정교하게 날아간 순항미사일에 가까웠던 셈이다. 일각에선 “5500만원 이하 구간에서도 15%가량은 세금이 늘었으니 문제 아니냐”고 주장한다. 틀린 얘긴 아니지만 그 15% 때문에 세금폭탄 얘기가 나왔다고 보긴 힘들다. 5500만원 이하 구간에서 세금이 30만원 이상 증가한 사람은 1만9000명에 불과하지만 7000만원 초과 그룹에선 109만 명이나 된다. 그나마 연말정산 보완대책이 실행되면 5500만원 이하에선 세금이 증가한 사람은 대부분 없어진다. 야당에선 정부가 서민·중산층의 지갑을 털었다고 열을 올렸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지갑을 털린 쪽은 거의 고소득층이다.

 이런 연말정산 개편은 보수 정권에서 성사된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소득재분배 효과가 강화된 결과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복지 확대를 위해 고소득층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연말정산 개편은 정부가 시대적 요청을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언론도 세금폭탄의 실체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 월급쟁이 대부분이 폭탄을 맞는 것처럼 오버한 건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기자들 세금이 늘어서 비판적 보도가 확산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니 말이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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