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잡지 '오후' 출간한 강인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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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소녀가 아닌, 그래서 볼 작품이 없던 20대 여성 독자를 위한 격월간 순정만화잡지가 나왔다.

이름하여 '오후(Owho)'다. '댕기''윙크''밍크''나인' 등 만드는 잡지마다 대 히트를 기록하며 1990년대 한국 순정만화 황금기를 주도했던 시공사 만화.캐릭터사업본부 강인선(41)본부장의 '작품'이다. 그런 그지만 "잡지 내면서 이렇게 초조하긴 처음"이라고 말한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최근 만화판에서 그의 승부수는 정말 도박일까.

"요즘 만화는 대부분 10대 편향이라서 20대 이상이 읽을 작품이 없어요. 재미와 깊이가 있는 만화라면 충분히 독자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른한 오후를 어루만지는 권신아씨의 표지 일러스트, 핸드백 속에 쏙 들어갈 만한 국판사이즈에 통통한 부피가 상큼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빈.나예리.유시진.권교정.이시영.한승희.송채성.석동연.장원선 등 작가군단도 짜임새 있다. 여기에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과'서양 골동양과자점'의 요시나가 후미의 신작은 즐거운 덤이다.

그의 별명은 '안드로이드 강'이다. 이 별명을 붙인 만화가 박무직씨에 따르면 강본부장은 겉은 인간이지만 속은 로봇인 안드로이드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오전 3시까지 토론을 해도 9시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엄청난 체력이나, 한밤중에 인쇄소를 찾아가 원고가 제대로 나왔는지 하나하나 챙기는 놀라운 열정이 인간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송락현 써드아이 편집장은 "전화를 받으면서 손님과 얘기를 하고 기자에게 지시를 하는 사람이 안드로이드 강"이라고 말한다. 부친상을 당한 모 여류만화가에게 문상을 가서 원고 독촉을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만화를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정말 피곤한 줄 몰랐어요. 내가 생각해도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아요. 덕분에 밑에 있는 사람들이 고생했죠."

5원이 생기면 호떡을 사먹는 대신 만화책을 빌려보았던 소녀는 홍익대 미대(금속공예)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6년 어린이잡지 '어깨동무'의 미술기자로 입사하면서 만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댕기'의 재창간을 맡아서는 이은혜.원수연.김혜린.김진.강경옥 등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신인만화가 공모전에 원고를 들고왔다가 담당자로부터 '빠꾸'를 맞은 천계영의 잠재력을 발견한 것도 그였다. '나인'을 만들면서는 이애림.이향우.최인선 등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을 대중 앞으로 불러냈다.

국내 온라인 만화의 개척자 생활을 잠시 하다가 시공사로 옮겨 중학생을 위한 '비쥬'를 만든 것이 지난해다. 강본부장은 '전혀 다른 것을 만들자'가 자신의 강점이자 성공 비결이 아닐까 하고 말한다.

"생계 때문에 순수 창작만화 대신 학습만화를 그리는 만화가가 늘어가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는 강본부장은 이 잡지를 통해 새로운 독자와 만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글.사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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