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차별 없는 회사…좋은 이미지 쌓을 기회"

미주중앙

입력

결국 기업논리가 정치를 이겼다. 동성애자 차별 논란을 빚었던 '종교자유보호법'이 재계의 요구대로 개정되면서 사회 이슈에 대한 기업 참여가 주목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치나 사회적 문제에는 한 발짝 비켜서는 것이 미국의 기업문화인데 이번에는 이례적"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발단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인디애나와 아칸소 주의회가 잇따라 '종교자유보호법'을 통과시키면서다. '업주는 본인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고객에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는 법안 내용이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 가능성이 다는 것. 즉각, 동성애자 관련 단체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일부 지역정부와 유명인들도 주지사의 서명 거부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는 법안 서명을 강행했고 이에 기업들도 반대 캠페인에 나서기 시작했다.

◆어떤 기업들이 참여했나

가장 먼저 비판 성명을 낸 기업은 인디애나에 본사가 있는 앤지스 리스트(Angis's List). 인디애나 주의회가 '종교자유보호법(Religious Freedom Restoration Act)'를 통과시키자 즉각 회사 트위터를 통해 '본사 확장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평가 및 알선 기업인 앤지스 리스트는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에 4000만 달러를 투자해 본사 건물을 신축할 계획이었다. 기업들의 움직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팀 쿡 애플 CEO의 기고문 때문. 지난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혔던 쿡 CEO는 지난 달 29일 워싱턴포스트(WP)지 오피니언 면에 '차별적인 종교자유법들은 위험하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전국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로 시작했다. 인디애나,아칸소 주와 비슷한 내용의 '종교자유보호법'을 시행중인 20개 주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어 '종교자유보호법'이 이웃을 차별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며 종교가 차별의 방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차별은 미국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자유와 평등이라는 건국정신에도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애플은 출신지나 외모, 신앙과 성적취향 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옐프, 트위터, 아메리칸 에어라인 등은 회사 트위터를 통해, 제네럴 일렉트릭(GE),나이키, 갭, 레비 스트라우스, 나스카 미디어그룹 등은 CEO가 직접 나서 '종교자유보호법'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또 인디애나주 기업인 제약업체 엘라이 릴리, 보험업체 앤섬 등도 가세했다.

GE의 제프 이멜트 CEO는 '이 법이 시행되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인디애나 주지사에게 보냈으며, 세계 최대 디젤엔진 제작 업체인 커민스의 대변인은 "유능한 인재들이 인디애나 주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할 것"이라며 "인디애나 주의 기업이나 주 전체 경제에도 불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옐프의 제레미 스토펄먼 CEO는 "차별을 만들어 내는 주에는 신규투자를 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 이밖에 나이키의 마크 파커 CEO는 "'종교자유보호법'은 직원과 고객 뿐 아니라 기업과 미국사회 전체에도 악법"이라며, 대형 할인매장 체인인 스타인 마트의 제이 스타인 CEO는 "어떤 종류의 차별도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 CEO는 아사 허치슨 아칸소 주지사에게 주의회를 통과한 '종교자유보호법'에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기업들, 왜 나섰나

전문가들은 고객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 변화를 원인중 하나로 꼽았다. 즉,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을 요구하고, 또 이를 과감히 드러낼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 이슈에 대한 목소리가 기업의 브랜드와 판매, 고용 등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는 분석이다.

또 기업들이 '종교자유보호법'을 비판하며 전면에 내세운 것이 차별 문제였다. 어떤 종류의 차별도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기업전략 전문가인 앤소니 존드로는 "기업들이 자사의 다양성을 강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는 물론 자사 직원이나 협력 업체들에도 차별 대신 다양성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는 것이다. 유명 백화점인 니먼 마커스 등에서 근무한 소매업 전문가 앨런 퀘스토름은 "이슈 자체도 총기 규제 등의 문제처럼 진영이 확연히 구분되는 이슈가 아닌 탓에 역풍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IT업체들의 참여는 업계 상층부가 여전히 백인 남성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차별 금지와 다양성을 강조함으로써 부정적인 인식을 희석하는 효과를 기대했다는 주장이다.

◆역풍은 없나

당장 기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참여 업체들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어메리칸 패밀리 어소시에이션과 패밀리 리서치 카운슬이라는 단체는 앤지스 리스트사 이용 반대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월마트의 페이스북에도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일부 고객들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김동필 기자

주요 기업들의 트위터 성명

*월마트

"허치슨 주지사와 주의회 지도자들이 종교자유법(HB1128)에 대해 다시 한번 심사숙고 하길 원한다. 우리는 종교적 자유의 중요성과 함께 차별적인 법을 만들지 않는 의회의 용기를 지지한다."

*애플

“애플은 모두에게 열린 기업이다. 우리는 인디애나 주의 종교자유법에 실망했으며, 아칸소 주의 비슷한 법안에 대해서는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길 바란다."

*트위터

“우리는 차별을 조장하는 법안들에 실망했다. 이 법안들은 불평등하며 기업에도 악역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모두의 평등을 지지한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평등을 약화시키는 법들에 대한 반대 성명을 지지한다. 우리는 평화와 번영, 관용의 사회를 추구한다."

*옐프

“아칸소,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 종교자유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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