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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의 교육카페] '사려'가 뭐죠? … 한자 몰라서 우리말을 외국어처럼 외우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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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성탁 기자
교육팀장

초등학생 자녀가 이렇게 질문하면 어떻게 답하십니까. “사려가 깊다고 하는데 ‘사려’가 무슨 뜻이에요?” 그냥 ‘생각’이란 뜻이라고 알려주면 ‘boy’가 ‘소년’이란 뜻인 것처럼 암기해야 할 일이 됩니다. ‘사려(思慮)’는 한자어이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사려는 ‘생각 사(思)’와 ‘생각할 려(慮)’가 합쳐진 말이야. 그래서 생각이란 뜻으로 쓰인단다.” 한자에 뜻과 소리가 있다는 걸 아는 자녀라면 금세 이해할 겁니다. 나아가 ‘사고력(思考力)’에도 ‘생각 사’가 쓰이고 ‘고려(考慮)’라는 말에도 ‘생각할 려’가 쓰인다고 알려줍니다. 외계어 같았던 어려운 낱말을 쉽게 잊지 않게 되고 다른 표현까지 터득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자녀에게 모르는 단어 가르치는 요령을 언급한 건 한자어를 잘 몰라 요즘 학생들의 학업 능력이 떨어진다는 교사들의 한탄 때문입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한자 공부를 과거보다 덜 합니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어중문과 교수에 따르면 우리말의 60~70%가 한자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자를 모르면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어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해 중·고교에서 거의 모든 과목에 포진해 있습니다. 중학교 교사들은 “요즘 아이들은 합집합·여집합을 배울 때도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합니다. 여집합(餘集合)은 전체집합에서 특정 집합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모두를 가리키는데 ‘남을 여(餘)’자를 알면 외우지 않아도 개념을 알 수 있습니다.

 국어는 물론이고 과학이나 사회 과목에도 개념어는 자주 등장합니다. 어류와 파충류의 중간으로 땅 위 또는 물속에서 사는 양서류(兩棲類)가 ‘두 량(兩)’과 ‘살 서(棲)’가 합쳐진 표현이란 걸 알면 의미를 기억하기 쉽습니다. 전 교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핵심 의미어는 대부분 한자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글로 읽을 줄만 알고 속뜻은 몰라 공부가 어려워지고 흥미를 잃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대학생도 용어의 개념을 파악하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많으니 초등학교 때부터 쉬운 한자를 가르치 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로 찬반 논란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한자어 해독력을 길러주는 것은 그런 논란과 무관하게 가능합니다. 전 교수는 “한자를 쓸 수 있느냐 마느냐는 나중 문제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한자의 뜻을 가르치는 독해 중심의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선 쉬운 한자를 예로 들면서 뜻과 소리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이후 모르는 한자어가 나오면 개별 한자의 뜻을 가르쳐주며 뜻풀이를 도와줍니다. 요즘은 한자어의 속뜻을 담은 사전도 있고 인터넷 검색만 해도 파악이 가능합니다. 대입 논술시험에도 개념어가 출제되니 한자어 속뜻 훈련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열심(熱心)히 하지 않으면 한심(寒心)한 사람이 된다는데 마음(心)이 뜨거워지게(熱) 하지 않으면 마음(心)이 차가워진다(寒)는 뜻이 담겼답니다.

김성탁 교육팀장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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