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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감당 못할 복지는 계층 갈등만 일으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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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경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연구위원

최근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무상복지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무상 산후조리원, 무상 교복을 시행하기로 하면서다. 2018년까지 무상 산후조리에 376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선거만 치르면 복지가 팽창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 이전에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하면서 복지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런 논쟁의 중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있다. 사회복지지출(Social Expenditure db, SOCX)이라는 국제비교통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 SOCX Version’ 발표에서 한국은 꼴찌와 일등을 동시에 기록했다. 회원국 중 사회복지 수준은 최하위권인 반면 복지 증가 속도는 최상위권이다.

 2014년엔 정부 재정의 30%가 처음으로 복지에 투입되었다. 공공복지지출은 148조원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0.4%가 복지에 쓰여 이 비율에서 OECD 최하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프랑스와 덴마크는 30%의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복지에 인색한 영국과 미국도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공공복지지출은 정부의 복지지출과 5대 사회보험의 급여를 더한 것이다.

 반면 사회복지지출의 증가 속도는 일등이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증가율은 13.1%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 같은 증가 속도가 앞으로 계속된다면 지출 규모는 5년 후면 2배, 8년 후면 3배, 10년째는 3.9배로 증가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증가세다. OECD 국가들의 연평균 증가율은 2∼8%에 불과하다.

 한국은 급속한 사회복지 성장세 덕분에 가까운 장래에 ‘복지 중진국’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사회복지의 양적 확대는 물론 질적 성숙 측면에서 재원배분의 균형과 재정 확보, 지출 성과를 위한 점검이 필요할 때다.

 하지만 최근 추이로 볼 때 지출구조와 배분구조가 바람직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복지지출의 70%가 보건의료와 공적연금이다. 사회서비스와 공공부조는 27%에 불과하다. 돈은 돈대로 많이 쓰는데도 국민은 그걸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출구조의 왜곡 현상을 보면 체감 복지 수준이 낮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일자리에 쓰이는 돈이 너무 적어서 청년들에게는 148조원의 복지지출이 그림의 떡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15~29세)이 100만 명에 이르면서 체감 실업률이 최고치(11.9%)를 기록하고 있지만 일자리 정책(ALMP)에 들어가는 돈은 3%에 불과하다. 청년 세대들의 절망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게다가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주거복지지출(주거급여)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최근의 전세 폭등, 월세 전환 현상은 취약계층의 주거 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돈을 쓸 데 쓰지 않다 보니 복지에 돈을 쏟아도 빈곤율(가처분소득 기준)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낮다. 또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이 같은 효과가 가장 낮다. 복지의 순기능은 사회 갈등 봉합이다. 그런데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취약계층에 집중적으로 돈을 써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복지지출 급증 탓에 나라 살림도 걱정이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지출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대상자를 조정하는 등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경제에 부담이 되는 4대 무상복지 시리즈(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연금·반값 등록금)를 먼저 손봐야 한다. 타당성과 효율성 차원에서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대상자의 소득·연령·근로 여부 등을 고려해 지출해야지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모든 계층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는 공무원연금을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정부는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같은 직접적인 증세 대신 비과세감면 정비, 지출구조의 조정, 지하경제 양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역대 정부에서도 예산 경직성과 기득권자의 저항 등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다. 비과세감면 축소는 직장인들의 ‘13월 월급 파동’에서 보듯 강한 조세저항이 따른다. 재정지출은 구조조정보다 매년 더 빠르게 증가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성과가 미미하다. 세정개혁이나 직접증세를 통한 재원확충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 세상에 ‘공짜 복지’는 없다. 누구나 소득이 있으면 부담을 해야 한다. 재정수입이 감소하는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국민들은 적게 벌든 많이 벌든 그에 비례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고용 없는 경제성장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으로 자본가들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만큼 이들의 부담이 뒤따라야 한다. 국민이 감당할 수 없는 복지나 사회 성과가 낮은 복지는 계층 갈등을 야기하고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지금이라도 한국형 적정 복지모델을 탐색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고경환 한국보건사회연구원·미래전략연구실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