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야당 내 철새야 … 겨울 닥쳐 따뜻한 데 찾아가는 게 뭐 나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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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2일 서울 공덕동 사무실에서 4·19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중앙포토]

지난 22일 서울 마포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기택(78) 전 민주당 총재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반질반질한 구두, 남색 계통의 차분한 양복. 팔순을 앞둔 그였지만,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 같은 정치 거목들과 어깨를 견주며 야당사(史)를 써나갔던 한창때의 눈매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근황을 묻자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제 (인터뷰를) 시작하자 이 말이지”라며 안경을 매만졌다. 이어 “늘그막에 철이 들어 요즘은 책에 빠져 산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하루 독서 2시간에 서예 2시간, 나머지 시간은 회고록 준비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게 그렇게 아쉽다. 아까 점심도 빵으로 때웠다”고 했다. 의원 시절 골초였던 그는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2년 전 담배도 끊었다.

 그는 1960년 고려대 학생위원장으로 4·19 주역이었다. 이를 정치적 기반으로 67년 7대 국회에 최연소(30세) 초선 의원이 됐다. 이후 YS와 DJ의 틈바구니에서 원내총무, 사무총장, 대표 등을 역임하며 7선 의원을 지냈다. 그는 90년 3당 합당 참여를 거부한 것을 정치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그는 97년 대선 직전 이회창 후보와 연합해 여권 인사로 변신했다. 그는 “DJ는 선거를 앞두고 하나하나에 신중했던 인물”이라고 평하면서도 “하지만 다시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땐 무척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에 대해선 “나는 그를 믿고 대선 전후로 그를 계속 도와줬는데, 그는 오히려 나를 공천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배신했다”고 했다. YS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다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언급하며 “YS 스타일과 본인의 신중함이 잘 섞인 인물”이라고 에둘러 평가했다.

1991년 9월 김대중·이기택 민주당 공동대표가 마포당사 입주식을 하고 있다(아래). [최승식 기자], [중앙포토]

 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때는 부산상고 후배인 노무현 캠프의 상임고문을, 2007년 대선 때는 고향(경북 포항) 및 고려대 후배인 이명박 후보 캠프 상임고문을 맡았다.

 - 정치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다고 봐야하나.

 “나는 영구 야당이고, 야당 내에서는 철새야. 더운데 사는 철새가 겨울이 닥쳤는데 얼어 죽으려고 거기 있어? 따듯한 곳으로 찾아가야지. 그게 뭐가 나빠.”

 그는 여전히 정치 현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올해로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선 "경제 정의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 본인이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시는데 소통의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람들을 청와대로 불러서 ‘나 답답해서 못살겠다’ 민심을 전해달라고 해야 한다. 5년 후면 다 평민으로 내려가는데 무슨 (대통령) 권위냐”고 했다.

 - 지금의 야당이 수권정당이 되려면 어떻게 변해야 하나.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협력하는 정치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공무원연금개혁 같은 것도 당연히 야당에서 협조를 해야 하고, 광화문에서 데모할 시간에 정책 경쟁을 해야 한다.”

글=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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