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책가방이 봄소풍 따라가고 싶대요 … 꼬맹이 등 뒤의 든든한 친구잖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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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책가방의 봄 소풍
무라카미 시이코 글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79쪽, 1만원

소풍 가는 날 아침, 방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 “나도 소풍 데려가 주면 안 돼?” 초등 2학년 겐이치의 책가방이다. 늘 메고 다니던 책가방에 팔·다리와 눈·코·입, 두툼한 눈썹까지 생겼다. 이 책가방은 어깨 너머로 배운 것도 많아 “아이고, 이런. 겐이치 어머니 되시는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늘 겐이치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책가방이라고 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도 할 줄 안다.

 책가방을 제치고 아들의 소풍을 따라가겠다는 아빠에게 “아버님은 언제든 소풍을 가실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바깥 세상과 만나는 건 학교 오갈 때뿐입니다. 그것도 교실로 들어가면 곧바로 캄캄한 사물함 속이죠. 그리고 즐거운 소풍이나 운동회 날은 모두 거들떠보지도 않고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쓸쓸하겠습니까”라고 책가방이 말할 때는 짠하기까지 한다. 어른들이 넓은 세상을 바쁘게 누리는 동안, 손에 잡히는 작은 세상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외동 겐이치의 마음이 이랬을까. 책가방은 소풍에서 겐이치를 괴롭히는 심술쟁이에게 따끔한 한 마디도 빼놓지 않는다. 소풍을 마친 오후, 부모가 마중 나오지 않아도 겐이치가 씩씩할 수 있었던 것도 책가방 친구가 있어서다.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종종거리는 초등 신입생들이 동네마다 눈에 띄는 때다. 이제부터 부모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이루고 자기 몫의 성취와 좌절을 감당해야 한다. 책가방이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기보다 등 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1년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던 냉장고가 “여름방학을 맞아 저도 수영장에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수줍게 말하면서 일이 시작되는 전작 『냉장고의 여름방학』만큼이나 흥미롭게 읽힌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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