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경제 살리려는데, 못하면 얼마나 한 맺히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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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김무성 새누리당·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만나 중동 4개국 순방 성과를 설명하고 경제 도약을 위한 협력을 당부했다. 이에 여야 대표는 “경제 앞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김 대표), “남북 관계도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자”(문 대표)며 경제 위기 극복에 한목소리를 냈다.왼쪽부터 조윤선 정무수석,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새정치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김현미 대표비서 실장. 한 사람 건너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김학용 대표비서실장, 김 대표, 박 대통령, 문 대표.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만남은 대통령선거 때인 2012년 12월 16일 TV토론 이후 2년여 만이다. 17일 오후 3시5분에 시작된 회동은 4시48분에 끝났다. 처음 청와대가 40분을 제안했던 것보다 한 시간 이상이 길어졌다.

 회동이 끝난 뒤 문 대표는 “박 대통령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박 대통령도 얘기를 경청해 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문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간 3자회동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회동이 시작되기 전, 먼저 접견장에 나와 두 대표를 기다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보통 대통령은 맨 뒤에 들어오지만 두 대표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먼저 가 계셨다”고 전했다.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올해가 중동에 진출한 지 40년이 되는 해인데, 경제 발전을 해서 다시 중동에 진출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중동 순방으로 대화를 풀어 갔다. “(청해부대에서) 장병을 격려하고 껴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덕담한 문 대표는 그러나 첫째, 둘째를 열거하며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 대표는 “4대 민생과제부터 해결돼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과 고소득자 과세 강화 ▶주거난 해소 ▶가계부채 대책 등의 경제이슈와 연내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요구했다. 문 대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 파기’를 언급하자 박 대통령은 이를 메모지에 쓰며 문 대표의 얼굴을 쳐다봤다.

 시작부터 문 대표가 돌직구를 던지자 “안 만나느니만 못했다”는 평을 받은 ‘박 대통령-김한길 전 대표-황우여 전 대표’의 2년 전 회동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현미 새정치연합 대표 비서실장은 “문 대표가 요구사항을 조목조목 적어 가자 대통령이 놀란 눈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측은 신경전을 펼치면서도 불쾌한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회동은 주로 경제이슈에 집중됐다. 박 대통령은 비공개로 바뀌자 문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지적한 경제이슈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했다. 전·월세대책에 대해 “올해 임대주택 12만 가구를 공급하려고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답하는 식이었다. 경제민주화가 미진하다는 문 대표의 지적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관련 법안을 많이 입법한 정부”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선 “동향 선후배 두 분이 잘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남북 관계를 언급하며 문 대표가 “교황 방북이 성사되면 특사로도 활용하고, 통일 대박 되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자 박 대통령이 웃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회동 말미 문 대표를 향해 “대통령이 저렇게 경제를 살리려 애쓰는데 경제살리기 법안에 협조 좀 해 달라. 문 대표가 여당 되시면 우리도 협조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경제 한 번 살려 보겠다는데 그것도 도와줄 수 없느냐”며 “국민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얼마나 한이 맺히겠느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여야 대표는 회동 후에도 2시간가량 청와대에 머물며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정무수석과 함께 언론에 발표할 문구를 조율했다. “중구난방으로 발표하지 말고, 여기서 핵심 내용을 정하자”는 이 실장의 제안을 두 대표가 수용했다. 결과문에 ‘허심탄회’라는 단어를 포함할지를 놓고서도 의견을 달리할 정도로 조율에 애를 먹었다. ‘정례적 대화’에 대한 해석도 달랐다. 문 대표는 “의제를 좁혀서 정례적으로 만나자”고 했지만, 김 대표는 “필요하면 만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결과문을 합의문으로 할지도 의견이 달라 회동 결과문으로 정리했다.

 회동 후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에 공감한 게 소득”(박대출 대변인)이라고 했고, 새정치연합은 “의료영리화법을 저지하고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 등을 지적한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김영록 수석대변인)”고 말했다.

권호·이지상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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