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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문어숙회, 소설『엄마를 부탁해』중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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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문어숙회입니다.

‘니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치며 밥 먹고 있는 거 보믄 세상에 부러울 게 뭬 있냐 싶었재.’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한 구절입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에 행복을 느낀 엄마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시간이 흘러 엄마는 나이 들고 머리가 아파 손조차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전의 엄마가 그랬듯 큰딸은 엄마의 입에 갓 삶은 문어를 넣어 줍니다. 소설 속 문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또 아리게 하는 엄마의 사랑입니다.

#‘개수대의 쇠바구니 속에는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문어가 죽은 채로 뻗어 있었다. 가스레인지에는 스테인리스 찜솥이 올려져 있었다. 엄마는 찜솥 바닥에 무를 깔고 문어를 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문어는 찌는 게 아니라 데치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너는 그만두었다. 엄마는 네가 썰어놓은 무를 찜솥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받침대를 맞추고 문어를 집어 통째로 올려놓고 뚜껑을 닫았다. (중략)

엄마는 찐 문어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썰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칼이 엇나갔다. 무를 자를 때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할게, 엄마. 네가 또다시 칼을 받아쥐었다. 무 냄새가 밴 뜨거운 문어를 썰어 그중 한 점을 집어 초고추장에 찍어 엄마에게 내밀었다. 항상 엄마가 너에게 해주던 일이다. 그럴 때면 너는 젓가락을 내밀어 받으려고 했다. 엄마 그리 먹으면 맛이 덜하다, 그냥 아, 해봐라, 했다. 엄마는 젓가락을 집어 받으려고 했다. 그러면 맛이 덜해 엄마, 그냥 아, 해봐! 벌어진 엄마의 입속으로 찐 문어 한 점을 밀어넣었다. 너도 한 점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찐 문어는 따뜻하고 물컹하고 부드러웠다. 아침부터 웬 문어를? 싶었으나 엄마와 너는 부엌에 선 채로 도마 위의 문어를 손으로 집어먹었다. 문어를 씹으면서 너는 문어를 집으려다가 자꾸만 놓치는 엄마의 손을 보았다. 네가 다시 집어주었다. 나중에 엄마는 스스로 문어를 집어먹는 걸 체념하고 네가 엄마의 입 속에 문어를 넣어주기를 기다렸다. 엄마의 손은 집중력이 없어 보였다. 문어를 씹으며 너는 어머니, 하고 불렀다.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처음이었다.’ - 소설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책에서는… 엄마는 큰딸이 사온 문어를 홍어 찌듯 찌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러나 몸이 예전같지 않다. 그런 엄마 대신 딸이 칼자루를 건네받아 문어를 썰어 엄마 입에 넣어준다. 책에서는 문어를 무와 함께 삶는다. 정병호 롯데호텔 모모야마 조리장은 “무를 넣고 삶으면 시원한 맛이 나고 식감이 부드러워진다”고 설명했다.

담백한 선비의 고기, 유자 뿌리면 색다른 맛

자식들과 생일을 보내려 아빠와 함께 서울역에 도착한 엄마는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쳐 홀로 남겨진다. 무심한 시간은 잘도 흐른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한다. 이후 각 장마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의 시선을 따라 흐른다. 첫 장이 작가인 큰딸의 얘기다. 셋째이자 큰딸은 엄마가 사라진 서울역 지하철에 간다. 그곳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되짚는다. 그리고 문어숙회를 만들어주던 엄마를 기억해 낸다.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만 같던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그 힘은 대단했다. 소설은 내내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의 우리네 엄마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남편과 자식들의 배경으로, 한결같이 뒷바라지하던 엄마의 모습이 우리네 엄마의 모습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2008년 출간 10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려나갈 만큼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동명의 연극과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고 『Please Look After Mom』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영국·폴란드 등 22개국에서 출간됐다.

 소설에서 문어는 엄마의 사랑이 배어있는 음식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엄마 생각에 가슴 한켠이 아린다. 그리고 또 하나, 쫄깃하면서 담백한 문어가 생각난다. 큰딸이 엄마의 입에 넣어주던 문어.

 한국에서 문어는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다. 경상북도 안동과 강원도 강릉 등에서 차례상에 올라가는 귀한 음식이다. 안동에서는 문어에 글월 문(文)자를 쓰기 때문에 예부터 글을 하는 선비가 먹는 고기를 뜻한다는 이유로 즐겨 먹었다. 문어 요리법도 단순하다. 뜨거운 물에 쪄내 새콤한 초장에 찍어먹거나 미나리 등과 함께 먹는 정도다. 최근에는 타우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억제하고 간의 해독작용을 도와 피로해소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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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어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일본이다. 세계 문어 총 어획량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약 14만t을 소비할 정도다. 문어를 많이 먹는 일본은 문어 조리법도 다양하다. 롯데호텔서울 일식당 모모야마의 정병호 조리장은 “일본은 문어를 ‘오차물(녹차를 우려낸 물)’에 삶아 초밥용으로 사용하거나 타코야키(문어빵), 문어초회로도 만들어 먹는다. 튀김·조림·볶음 등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양에서 문어는 혐오스러운 동물로 여겨 ‘데빌 피시(devil fish)’로 불리며 거의 먹지 않는다. 특히 유럽에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약자를 괴롭히는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겼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엔 문어 머리를 한 처칠 영국 총리가 문어발로 인도와 아프리카 등 식민지를 휘감고 있는 포스터를 만들어 영국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했다. 다만 지중해에 위치한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등에서는 문어를 즐겨 먹어왔다. 문어의 쫄깃한 맛을 살리는 한국과 달리 푹 삶아 부드러운 식감이 나도록 조리한다. 스페인의 대표 요리중 뽈뽀(Pulpo)만 봐도 알 수 있다. 뽈뽀는 푹 삶아 부드럽게 만든 문어를 얇게 썰어 올리브오일과 소금·파프리카 가루로 간을 한다.

정병호 조리장은 “문어를 자를 때 단면을 톱니 모양으로 자르면 소스가 잘 묻는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한국에선 소설에 나온 것처럼 문어와 무를 함께 삶는 게 일반적이다. 정 조리장은 “문어와 오징어는 무를 넣고 삶으면 시원한 맛이 나고 식감이 부드러워진다”고 말했다. 문어를 손질할 때도 무를 사용할 수 있다. 문어를 씻을 때 무를 갈아 문지르면 빨판이나 몸통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삶은 문어는 머리를 위로 향하게 한 후 자연 건조시키면 육수가 살에 배어 맛이 좋아진다. 먹고 남은 문어는 다리째 랩으로 감싼 후 냉장고에 넣으면 3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문어를 상온에 그대로 방치하면 문어 다리가 꼬여 나중에 자르기 어렵다. 냉동실에 넣어도 안 된다. 문어를 비롯한 모든 생선은 냉동시키면 해동하는 과정에서 구멍이 생겨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문어라고 하면 초장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문어에 소금이나 유자를 뿌리거나 찍어 먹어도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정 조리장은 “문어는 신맛이 나는 음식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라임이나 감귤류와 함께 먹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독자의 이야기]

매년 강원도로 가족 여행 … ‘문어 삶기’는 남편 담당

권소현(47·성남시 분당동)

우리 가족은 5년 전 겨울부터 그해 망년회를 강원도 용평에 가서 합니다. 추운 겨울, 춥디 추운 용평의 겨울숲으로 들어가는 거죠. 문어이야기에 왜 용평이냐고요. 우리 가족은 용평에 숙소를 잡고 꼭 주문진 시장에 장을 보러갑니다. 바다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이 가득한 주문진. 그곳에 가면 제철회도 먹고 신선한 오징어와 조개도 삽니다. 그리고 꼭 빠지지 않고 사는 메뉴가 살아있는 문어입니다. 남동생들의 가족과 우리 가족, 친정부모님까지 12명의 긴 겨울밤을 책임져 줄 건강식 메뉴로 사랑받는 문어. 주문진 문어를 삶아 먹기 위해 여행 출발 전 집에서 큰 냄비를 챙깁니다. 문어가 크고 실해 숙소에 있는 냄비로는 삶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냄비를 싣는 걸 볼 때면 친정엄마는 “번거롭게 이게 뭐냐. 6·25 피난 가는 것도 아니고”라고 하시고요. 문어 삶는 건 항상 큰사위인 남편의 몫입니다. 큰소리치며 유일하게 우리 집 여자들을 위해 하는 요리죠. 정말 잘 삶긴 해요. 살아서 탈출하려는 문어를 채반 위에 통째로 넣어 큰 냄비에 넣고 남편의 비밀 노하우로 삶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비밀 노하우는 바로 ‘물 이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입니다. 그리고 뚜껑을 꽉 눌러 놓습니다. 재료가 좋으면 아무 첨가물도 필요 없는 거 같아요. 잘 삶아진 문어를 얇게 썰어서 초장에 찍어 먹으며 즐거워하던 친정부모님과 가족들이 생각나네요. 다음 날 밤엔 얇게 저민 문어를 샐러드에 얹어 와인과 함께 먹습니다. 사위가 삶아준 문어를 정말 좋아하시는 부모님. 건강하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올해 한 번 더 모시고 가야겠어요. 벌써 봄이 오는데 주문진에 가면 생문어를 살수 있을까요. 살아있는 문어 삶기, 어렵지 않아요. 신선한 맛 그 자체랍니다. 다른 분들도 도전해보세요.

[서울의 문어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문어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그랜드인터컨티넨탈 배한철 총주방장,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 롯데호텔서울 모모야마 정병호 조리장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문어집

“옛날 포장마차 느낌의 인테리어가 정겹다. 깔끔한 맛의 문어삼합이 일품이다”

● 특징: 테이블이 6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지만 가로수길 맛집으로 통한다. 경남 통영에서 직송해오는 자연산 돌문어를 사용하는 데다 당일 사용할 재료만 받기 때문에 신선하다. 문어숙회의 기본 양념으로는 간장·기름장·초고추장을 준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은 편이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2·3차로 즐겨 찾는 이들이 많다.

● 가격: 돌문어 2만8000원(2인 세트)·6만원(3~4인용), 문어삼합 3만5000원(中) 5만원(大)

● 영업 시간: 오후 6시~오전 3시

● 전화번호: 02-514-3271

● 주소: 강남구 압구정로2길 57(신사동 516-18)

● 주차: 불가

돌곰네

“김·미역·톳 등을 곁들여 문어숙회를 즐기는 이색적인 맛이 매력적이다”

● 특징: 특징: 아파트 단지 상가의 지하에 있는 실내형 포장마차로 국내산 돌문어와 산곰장어를 판다. 전남 고흥에서 공수해 온 문어로 만든 회국수·비빔밥·매운탕 등 다양한 문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문어숙회. 마른 김과 미역, 톳을 함께 싸 먹는다.

● 가격: 돌문어톳쌈 4만5000원

● 영업 시간: 오전 11시30분~오전 5시(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3446-2928

● 주소: 강남구 언주로 146길 18 동현아파트 6동(논현동 105)

● 주차: 오후 6시 이후 발레파킹(2000원) 가능

무너섬

“문어가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먹기 편하다. 문어가 나오기 전 나오는 반찬들도 맛있다”

● 특징: 문어를 발음 그대로 사용한 상호, 바다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문어 사진들로 꾸며진 입구 등이 문어전문점이라는 걸 알려준다. 주문하면 수조에서 문어를 꺼내 조리해준다. 문어숙회는 슬라이스한 문어만, 문어모듬은 슬라이스한 문어와 멍게·개불·해삼·멍게를 함께 낸다. 기본 양념으로 초고추장과 기름장을 준다.

● 가격: 문어숙회 2만5000원(小)·3만5000원(中)·4만5000원(大), 문어모듬 3만5000원(小)·4만5000원(大)

● 영업 시간: 24시간 영업

● 전화번호: 02-544-5525

● 주소: 강남구 강남대로 152길 18(신사동 514)

● 주차: 오후 6시 이후 발레파킹(2000원) 가능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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