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북창동 룸살롱 건물, 이젠 창업 꿈꾸는 청년 살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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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우 대표가 ‘스페이스 노아’ 앞에서 강남통신 에코백을 들고 뛰어올랐다. 건물 외벽을 두른 현수막에 김구 선생, 아인슈타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문화강국 주창
자였고,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이자 인류애를 실천한 위인이다.

서울 북창동 유흥업소 사이. 김구, 아인슈타인,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걸린 건물이 있다. 룸살롱이던 공간을 개조해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공동 사무실(Coworking Space)로 만든 ‘스페이스 노아’다. 스페이스 노아에는 1인 기업가, 프리랜서, 스타트업, 소셜 벤처들이 창업의 싹을 틔우고 있다.

 ‘노아’라는 이름은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따왔다. 박근우(39) 스페이스 노아 대표는 “이 건물은 원래 있던 룸살롱이 망하고 1년 이상 비어 있었다”며 “죽은 공간에 젊음의 새로움을 심는다는 의미에서 스페이스 노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치과의사다. 2013년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의 치과 주치의로도 일하고 있다. 그는 2012년까지 스리랑카와 아프리카 등지로 의료봉사를 다니며 아동 노동 착취와 성매매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원조보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페이스 노아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12년 어느날 밤거리를 걷던 그에게 북창동 룸살롱 호객꾼이 건네준 전단지였다. 박 대표는 “인간 매매가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다음 날 낮에 둘러본 북창동은 빈 룸살롱 건물들이 즐비한 죽은 거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북창동을 청년 혁신가들이 모여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란 생각을 했다.

 그해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춰 스페이스 노아의 문을 열었다. 정부나 기업이 성공 가능성이 있는 창업자들을 선발해서 키우고 있다면 스페이스 노아는 창업을 꿈꾸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공생의 기틀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인력거 여행사 ‘아띠인력거’, 문화행사 전문 ‘최게바라 기획사’ 등이 이곳에서 시작했다. 박 대표는 “창업자들은 임대료 월 10만원으로 사무실을 사용한다. 월요일에는 회원들끼리 브런치를 먹으며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고 지식과 경험을 나눈다”고 말했다. 네트워킹 파티 등의 이벤트와 창업에 도움되는 강연·세미나도 열고 있다. 세미나나 강연은 최소한의 참가비를 받거나 모금 또는 무료로 진행한다.

 그간 스페이스 노아를 통해 창업의 꿈을 이룬 사람의 수는 180명, 매달 창업을 꿈꾸며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의 수는 3500~5000명이다. 박 대표는 “새로운 청년 문화가 자리 잡고 창업이 일어나는 공간이 된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만난 사람=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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