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가옥 오늘부터 시민에 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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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종필 전 총리(JP) 등과 5ㆍ16 계획을 세웠던 서울 신당동 가옥이 복원 작업을 마치고 17일 시민에게 공개된다. 신당동 가옥은 박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에 이사와 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옮겨갈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산 곳이다. 이사 후 7개월만에 아들 박지만 씨를 낳았고, 곧 소장으로 진급했다. 5ㆍ16 당시 ‘혁명 공약문’이 쓰여진 곳이다. 문구를 다듬은 JP는 지난 14일 기자와 만나 가옥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다.

“내가 58년 육군본부 정보국장에게 건의해서 (박 전 대통령에게) 거처를 마련해 드린 거야. 5ㆍ16 하루 전날인 15일 나는 낮부터 신당동에 있었지. ‘혁명 공약문’을 다듬기 위해서였어. 밤 11시쯤 됐을까. 모든 준비가 끝나고 6관구 사령부(5·16 지휘소 역할)로 이동해야 했지. 군화를 신은 채 마루 의자에 앉아 나갈 채비를 하던 박 대통령 모습이 눈에 선하네. 제대로 복원됐는지 꼭 가봐야겠어.”

박정희 가옥은 ‘1961년의 모습’으로 재현됐다. 박 전 대통령이 군화끈을 매던 마루도 그때 그 모습이다. 당시 육영수 여사가 5ㆍ16 직후인 7월 신당동 가옥에서 미국 육군차관 부인의 내방을 받는 사진도 걸려 있다. 지금의 응접실 가구는 바로 이 사진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정원도 그때 그대로다.
61년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1학년이던 박근령씨가 썼던 것과 같은 종류의 교과서가 전시돼 있다. 교과서는 박 대통령이 실제 사용한 것은 아니고 고증을 통해 재현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야전 점퍼도 당시와 같은 것을 구해 재현한 것이다.
61년 이후엔 박 전 대통령의 장모 이경령 여사가 76년까지 살았고, 76~79년엔 비어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79~81년까지는 근혜ㆍ근령ㆍ지만 남매가 살았다. 근령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께서 우리 남매를 데리고 가끔 들렀다. 돌 하나도 그대로 두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자회사인 조선도시경영주식회사가 1930~40년대 장충동·신당동에 현대화된 ‘문화 주택’을 지었다. 박정희 가옥은 현존하는 유일한 문화주택이다. 시민 개방은 하루 4회, 60명씩 사전 예약을 받아 이뤄질 예정이다.

한애란 기자, 김지은(인하대 건축학) 인턴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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