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영향받는 업종은?…한국은행 통계로 예상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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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은 과연 모든 사람에게 장밋빛 미래를 안겨줄까. 국가경제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만큼 서울 여의도에서 처리한 김영란법은 바닷가 어민, 논밭의 농민에게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 3일 국회가 김영란법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킨 이후 정치권에선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밑바닥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현실화되자 ‘서민경제 위축’이 발등의 불이 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1일 “(김영란법으로 인해) 서민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법 통과 뒤 골프장과 고급 음식점과 같은 서민 생활과 동떨어진 곳의 영업 타격 우려가 부각되다 보니 상당수 국민은 “그런 곳이 타격을 입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과연 1년 6개월 뒤로 다가온 김영란법의 시행은 ‘남의 일’에 그칠까.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직업군에 따라 법 시행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특히 요식업과 농수축산업 등 서민경제에는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한국은행이 작성하는 ‘산업연관표’에 나타난 통계적 예측이다. 산업연관표는 각 산업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하나의 표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통계표다. 자동차 산업이 자동차 부품, 금속, 플라스틱 산업 등 자동차를 만들 때 중간재로 소비되는 산업과 어떤 관계인지를 통계로 설명하게 된다.

그런 산업연관표(2010년 실측, 2012년 연장 기준)에 따르면 ‘음식점 및 주점’의 생산유발계수는 ‘육류 및 낙농업’의 경우 0.094에 달한다. 쉽게 말해 음식점 매출이 1000원 오르면 육류 생산은 94원 늘어난다는 얘기다. 반대로 매상이 1000원 줄면 육류 생산은 94원 줄어든다. 이런 생산유발계수에 따르면 음식점이 1000원의 매출 타격을 입을 때 ‘도소매 서비스’는 130원, ‘부동산 임대 및 공급’은 53원, ‘채소 및 과실’은 45원, ‘곡물 및 식량작물’은 37원, ‘수산물’은 31원, ‘정곡 및 제분’은 39원, ‘사료’는 33원, ‘주류’는 26원 등의 생산 감소를 유발한다. 음식이 안 팔리니 음식 재료를 공급하는 도매상이 어렵고, 도매상이 힘드니 농민이나 어부, 축산업자에게 각종 농축수산품을 안 사고, 결국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면 임대료를 내기 어려워 가게를 내놓을 수 있고, 식당 종업원은 일자리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음식점과 주점은 영향력계수가 1.075에 달한다. 영향력계수는 어떤 산업의 생산유발계수를 다른 산업과 비교한 것으로 1보다 크면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주고, 1보다 작으면 상대적으로 더 작은 영향을 준다는 걸 의미한다.

영향력 계수가 0.522에 불과한 ‘도시가스’처럼 다른 산업에 별 영향을 못 주는 산업에 비해 음식점 및 주점은 다른 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쳐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 김영란법이 단순히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비효과처럼 결국 내 손해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백화점의 명절 선물 매출의 30~40%가 법인에서 나오는 걸 고려하면 백화점에 납품하는 농축수산업계는 생산유발계수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직접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등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은 단기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선진국의 예를 보면 법이 실행되고 분위기가 정착되면 틀림 없이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며 “국가청렴도와 경제력은 정비례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청렴도는 43위(2014년 기준) 불과하다. 반면 우리가 흔히 선진국으로 부르는 덴마크·핀란드·스웨덴 등은 청렴도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거쳐야 할 성장통이란 얘기다. 김영란법이 당초 의도한 반부패·투명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할지, 아니면 서민경제 위축이라는 고통만 가중시킬지는 1년 6개월 동안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데 달렸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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