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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카드사 3분기 갚을 빚 20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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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의 신용위기가 '플라스틱 버블'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2002년 4월 18일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이 경고는 결국 1년도 안돼 현실로 나타났다. 신용카드 거품이 꺼지면서 신용대란(大亂)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의 정부 대응이 늦었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카드사들은 이를 외면한 채 지난해 말까지 몸집 불리기 경쟁을 계속해 부실을 키웠기 때문이다.

3백만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 중 카드로 문제가 생긴 경우가 1백74만여명. 카드사는 길거리에서 경품을 주며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했고, 소비자는 '신용카드=현금 서비스 카드'란 인식 아래 급하면 현찰을 빼내 쓴 결과다.

"외환이 관련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외환위기의 축소판이다. 정부와 카드사.소비자.신용평가회사의 무책임이 빚은 예견된 위기다."(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카드사 부실은 올 초 주된 자금 조달원인 카드채의 소화불량증을 가져왔다. SK 사태와 맞물려 카드사 부실이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등장하자 3월과 4월 잇따라 정부 대책이 나왔다. 그러나 카드발 금융시장의 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장의 골칫거리 카드채=정부는 4월 3일 '관치(官治)'라는 지적을 무릅쓰고 6월까지 만기가 돌아올 투신사 보유 카드채 10조4천억원어치에 대한 처리를 투신권과 은행.보험사에 떠넘겼다. 절반은 투신사 스스로 만기를 늦추고, 나머지 절반은 은행.보험사 등 다른 금융권에서 지원해 사들였다. 카드사 스스로 4조5천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하도록 했다.

"카드사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높아진 시장 금리에 맞춰 카드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조달비용이 높다는 이유로 꺼린다."(서태종 금융감독위원회 비은행감독과장)

연 5%대였던 카드채 금리는 7%대에 육박한 상태. 카드사는 카드채와 기업어음(CP).자산유동화증권(ABS)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 고객에게 할부구매 및 카드대출.현금 서비스를 한다. 카드채가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으면 카드사의 어려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용 떨어진 신용카드사=카드발 위기의 배경에는 카드사의 경영관행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카드사의 경영 악화는 불투명하고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됐다. 문제가 드러난 지금도 부실경영의 원인과 책임이 가려지지 않았다.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방조하고 있다."(박근용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대표적 잘못된 경영관행으로 옵션CP가 꼽힌다. 만기가 돌아오면 상환하는 게 원칙인 CP에 만기를 거듭 연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카드사의 자금조달과 운용을 방만하게 만들었다는 것. 옵션CP는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카드채 발행이 안되는 것은 조달비용이 높아서가 아니라 인수자가 없는 탓이 크다."(이보우 여신금융협회 상무)

4.3 대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카드사를 지원한 기관투자가들은 과거 대우채처럼 시장이 어려워질 때마다 만기 연장 등으로 자금이 묶이는 것을 걱정한다. 정부는 카드사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다고 강조하지만, 시장은 믿지 않으며 카드채 인수를 꺼리고 있다.

◆하반기 이후가 더 걱정=정부 대책으로 6월 말까지 유예된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는 7월 이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9개 전업계 카드사가 7~9월에 갚아야 할 부채는 20조원에 이른다. 참여연대는 드러나지 않은 부실까지 합치면 2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기본적으로 '경기 회복→카드 이용 증가→연체율 하락.카드사 신용 회복→카드채 발행 증가'를 통해 카드사의 영업이 나아져야 하는데 하반기에도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은 작다.

"다른 금융권도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6월 말 다시 만기 연장을 요청하기 어려울 것이다."(김병덕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지난해 하반기부터 늘어나 10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대환대출의 만기가 속속 돌아오는 점도 문제이다.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카드 대출의 만기를 연장한 대환대출은 LG카드가 4조8천억원, 삼성.국민카드가 각각 1조~2조원 규모로 9월부터 만기가 찬다. 그 안에 대출금을 갚을 고객이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상당 부분 만기를 다시 늦추는 재(再)대환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근본 대책 세워야=현 수준의 연체율을 감안해 카드업계가 4조5천억원 규모의 자본확충 계획을 이행하고 있는데, 연체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자본확충만으론 경영 정상화가 어려워진다. 투신사 보유 채권의 금리를 8~10%로 높여주고 만기를 1~3년 연장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지만 경기와 소비가 회복되지 않는 한 효과는 미지수다. 따라서 부실의 직접 원인인 연체 해소를 경기회복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으로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회생이 가능한 카드사는 살리고 부실이 큰 곳은 시장원리대로 처리해야 한다."(박근용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기존 주주의 주식은 소각하고 다른 곳에 자산과 부채를 인수시키자는 대안도 거론되고 있다.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부실 카드사의 자산을 건전화하기 위해 자산.부채 인수방식을 고려해야 한다."(이건범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카드사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아직 상장하지 않은 곳의 증시 상장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9개 전업카드사 중 상장사는 LG.국민.외환카드 등 3개사다.

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장세정 경제부 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22일자 E4면 '카드사 3분기 갚을 빚 20조' 기사와 관련, 삼성카드는 3분기 만기 상환 부채가 2조1천8백90억원이라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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