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조의금 들고 문상 고위직과 '초특급 마당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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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7일 검찰과 경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윤씨는 군 권력이 막강했던 1980년대부터 군 인사들을 중심으로 교제해오다 이후 검찰.경찰 등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검찰은 압수한 윤씨의 수첩에 적혀있는 인사 중 상당수가 윤씨의 로비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 "초특급 마당발"=윤씨를 아는 한 중견 검사는 " 그는 특정 지역 출신 정.관계 인사들과 호형호제라는 사이라고 과시하고 다녔다"며 "전직 경찰청장.고검장 출신 변호사와도 실제로 친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를 모르면 '실세'가 아니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윤씨는 체포된 후 조사 과정에서 "내가 이 건물에 언제부터 드나들었는지 아느냐" "판을 엎어버릴 수도 있다" "내가 불면 다칠 사람이 많다"는 등의 발언도 했다.

또 윤씨는 10여 년 전부터 검찰.경찰 간부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다녔다. 지난해 A검사장이 상을 당하자 윤씨는 직접 문상을 하고 거액의 조의금을 쾌척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자리를 옮겨가며 문상 온 검사들 여러 명과 격의 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순천지청이 96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윤씨를 수사하면서 통화 내역을 조사했을 때 그가 검찰 고위 인사 및 경찰청장 등과 통화하고 식사를 함께 한 정황 등이 포착돼 수사검사도 놀랐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윤씨의 이 같은 행각이 소문이 나면서 '윤씨가 주는 건 절대 받지 말라'는 얘기가 검사들 사이에 돌았다. 요주의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윤씨는 80년대 당시 소외됐던 비(非)'하나회(육사 11기 중심으로 조직된 군내의 사조직)' 출신 장성들에게 접근해 부대 행사 명목으로 돼지 200여 마리를 조건 없이 기증하는 식으로 군 인맥을 쌓았다고 한다. 윤씨는 김영삼 정부에서 하나회가 해체되고 자신의 지인들이 군 핵심부로 진출하자 이를 배경으로 각종 군납과 군 발주 공사 등 이권에 개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수사 정보 유출 가능성도"=구속영장에는 윤씨가 "추가 제보를 하지 않고 제보한 것도 축소시켜 주겠다"며 H건설로부터 갈취한 9억원 중 일부를 검사장을 지낸 김모 변호사 사무실에서 받은 것으로 적혀 있다. 검찰은 김 변호사 사무실에서 윤씨와 H건설 관계자들이 "더 이상 H건설의 비리를 제보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체포되기 며칠 전 사무실을 폐쇄하고 증거자료를 폐기한 점 등을 미뤄 윤씨와 친분 있는 내부 인사가 수사 정보를 사전에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검찰은 윤씨가 차명계좌를 통해 거액의 돈을 세탁한 흔적을 잡고 계좌추적을 확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윤씨가 관리한 차명계좌 10여 개를 발견해 돈 흐름을 추적 중"이라며 "이는 윤씨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강원랜드에서 칩으로 바꾼 뒤 현금으로 찾아간 수표 83억원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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