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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보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건 또 뭔 소리? 텔레비전 연속극 제목인가?
가끔은 이런 말도 한다 "보고 또 보고... 자는 손녀딸도 다시 보고..."

갑상선 절제수술이 끝나기 전 마무리 작업을 할 때 필자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갑상선은 어느 장기 보다 혈관이 많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기다. 수술 중에 이 혈관들을 일일히 다 찾아 결찰하고 지혈을 했는데도 수술 후에 환자가 기침을 하거나 목에 힘을 주거나 했을 때 지혈한 혈관 중에서 어느 것이 터져 출혈이 되는 수가 있다. 출혈량이 많으면 응급상황이 된다. 소위 기도 주위의 혈종 형성(hematoma formation)으로 기도가 눌려져서 호흡곤란이 야기된다. 숨을 못 쉬니까 사고로 이어지고...

갑상선 외과의사는 이런 상황을 만나면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 급하면 병실에서라도 수술부위를 열고 혈종을 제거해서 기도(airway)를 확보해야 한다. 아 ~~, 이런 불청객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싫어도 1년에 한 두 번은 만나지...문헌에는 0.7~3%쯤 되고 필자는 0.5%다(J Korean Med Sci 2010;25:541-5).

출혈이 제일 잘 되는 부위는 성대신경이 후두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다. 성대신경 전면과 후면으로 가느다란 동맥과 정맥이 측면에서 기도 쪽으로 타고 올라 오는 부위다. 신경과 엉켜 있으니 지혈이 쉽지 않다. 필자는 확대경을 쓰고 일일히 봉합 결찰(suture ligation) 을 한다. 그냥 단순 결찰(hand tie) 했다가는 나중에 환자가 기침할 때 결찰한 것이 쏙 빠져 나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외에 상부 갑상선 동정맥, 갑상선을 싸고 있는 근육, 기도벽, 종격동 입구 등도 요주의 장소가 된다.

필자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어째 사람이 대범해 지지 않고 수술 테크닉이 점점 째째해지기 이를데 없다. 옆에서 제자들이 보기에도 점점 더 답답해지나 보다. 때린데 또 때린다고 지혈이 되었는데도 보고 또 보고 확인해 보니까 말이지. " 선생님, 저희들이 다시 체크 하겠습니다" (이놈들이 자꾸 나를 밀어 내려고 하네..... 허허, 너희들도 나중에 당해 봐야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

수술 끝나고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지면 목소리는 물론 수술 부위가 출혈로 부어 오르는지 반드시 체크한다. 회복실에서 발견되는 것은 대량 출혈이므로 즉시 수술실로 옮겨 출혈점을 체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병실에서 간호사의 긴급 호출이 온다. "환자 목이 부었어요" "아이쿠 핏줄 터졌나 보다" 급히 올라가 보면 약간의 붓기이지 출혈은 아니다. 휴 ~~. 그래도 간호사를 칭찬하고 내려 온다. 야단치면 다음에 진짜 문제가 생겨도 보고를 안할지도 모르니까. 때로는 진짜로 다급하게 부르기도 한다.

올라 가보면 수술부위 피부가 정말로 출혈반점(ecchymosis)으로 변색되어 있다. 피부의 출혈반점은 소량의 피하 출혈이기 때문에 대게는 그냥두어도 시간이 지나면 흡수된다. 그래도 더 이상 붓는지 계속 관찰(close observation)은 해야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지.

갑상선외과 의사가 수술후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바로 이 수술부위 출혈이다. 출혈이 일어나면 정말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난다. 경험 적은 젊은 친구들은 어떡하든 재수술을 피하려고 우물쭈물 미적되는 경향이 있다. 과감히 재수술로 혈종을 제거하고 출혈점을 잡아주어야 회복도 빠르고 마음도 편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이지...
수술 종결 때 "보고 또 보고" 해야 한다는 것이지. 답답해도 말이지...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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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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