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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디자이너 정병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금 우리 출판은 종대한 전환기에 와있습니다. 70년대 후반부터 한글가로쓰기가 자리잡게 되면서 한글의 글자꼴을 어떻게 개발해내어야 하느냐 하는것이 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또 시각화가 촉진되어 가는 상황에서 출판디자인, 특히 가로쓰기에 적합한 디자인의 개발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출판디자이너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직종에서 외롭게 일해왔고 출판계가 디자인의 필요성을 실감하고있는 지금, 정병규씨(38)는 앞으로 디자인을 생각하지 않는 출판은 어려워질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글 글자꼴의 개발은 시급합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글자꼴이 나왔습니다만 가로쓰기·한글전용이 출판물에서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여서 우리 글을 보다 아름답게하는 한글조형미의 새로운 발견이 정말 중요합니다. 기존의 형태에서 변화도 찾을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일정한 크기의 4각형안에 구속되는 우리글을 과감히 변혁시켜 영어의 「Mif」등과 같은 변화와 리듬있는 형태로 바꾸어 보는 것까지 생각할수 있습니다.』
정씨는 한 때 한글글자꼴의 연구에 일생을 걸어볼 생각도 했으나 현실적 벽에 부닥쳤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학자·전문가들의 집중적인 연구가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미에서는 다양한 활자체가 만들어져 쓰이고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게된것은 글자체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자기가 개발한 활자가 널리 쓰이기만하면 평생이 보장되기 때문에 다투어 활자체개발에 나선다는것.
정씨는 70년대 책표지디자인이 중요시되고 있지 않을때 다양한 시도를 하여 그때까지 평면적이고 단순했던 표지디자인을 지금의 형태로 바꾸는데 선도적 역할을했다. 그리고 많은 출판물의 내용을 시각화하는데 앞장섰다. 또 82∼83년 사이 프랑스 에스티엔대에 가서 출판디자인을 전공하고 돌아왔다.
최근 「책과 선택」등을 통해 출판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출판실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출판계는 내용과 독자가 직접 만난다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장식정도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용만 좋으면 읽는다는 단계를 지나서 전달방법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떠한 형태로 보여주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나온 출판물은 경쟁에 이길수 없게 되었고, 출판디자인은 그 자체로 출판물의 중요한 요소가 된것입니다.』
정씨는 특히 잡지에서는 디자인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게끔 변해갈 것으로 전망했다.
예를들면 사진 하나의 배열·모양 만들기·선택이 그들의 내용을 살려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게 된다는것.
『가로쓰기에 알맞은 디자인이 어떤것인지 저 자신이 잘 알고있지 못합니다. 실험과 연습을 하고있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본출판물의 영향을 받은 편집에서는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씨가 보기에는 우리 출판물이 잡지·신문·서적을 통틀어 지금 방황하고 있으며, 그런만큼 하루 빨리 우리 나름의 출판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창출해 내어야할 시점에 있다고 말한다. 물결 속에 방향을 잡아가는것이 되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출판경영자들이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그 방면에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고 말한다.
정씨의 오랜 실험과 이론은 최근 들어 많은 결실을 남고있다. 그가 디자인해낸 「고은전집」 「이효석전집」 「열화당미술선서」등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책과 선택」의 디자인은 출판계에 신선한 충격이 되었고, 출판물의 시각관리가 중요함을 절감케했다. 정씨는 곧 독자적인 출판디자인사무실을 차린다. 출판디자인 전문화·산업화를 위한 국내 첫 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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