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한국은 더 이상 주변국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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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동아시아에서 반복되는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어떻게 하면 평화와 상생의 구도로 바꿀 수 있을까. 이 같은 문제 의식으로부터 이른바 ‘동아시아 담론’은 출발한다. 한·중·일뿐 아니라 미국은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포괄하는 광범한 논의다.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 공동체를 구상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단계로까지 나아간다. 구체적 논의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했다.
지나친 이상주의라거나 요원하고 공허한 얘기라는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 동아시아 담론에 초기부터 참여해 이 논의의 지평을 꾸준히 확장하며 동아시아 공동체론으로까지 전개해온 대표적 학자가 연세대 사학과의 백영서 교수다. 창비 부주간이기도 한 그가 기획해 펴낸 신간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제국을 넘어 공동체로』는 지난 10여년 논의의 결실.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묶는 개념 정립부터 새롭게 시도했다.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도 유럽 지역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긴밀히 관련을 맺고 살아왔음을 입증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선행돼야 미래의 수평적 ‘동아시아 연합’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16세기 이래 현재까지 동아시아 지역 질서는 중심과 주변의 수직적 관계였다. 패권의 중심 자리는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릴레이로 차지했다. 이는 ‘제국적 질서’라고 규정된다. 국가 대 국가끼리 중심과 주변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국가간 질서가 20세기 후반부터 바뀌며 탈중심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백 교수의 판단이다. 정부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각 나라의 지방자치단체, 기업, 시민단체 등의 네트워크 교류가 늘고 있다는 것. 이로부터 백 교수는 동아시아가 유럽연합과 같은 ‘공동체적 질서’로 나아갈 가능성을 모색하며, 주변국이었던 한국이 수평적 질서의 새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을 주도하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백 교수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었다. 그의 동아시아 담론에 주목해 온 (주)태평양 연구비를 기부했고, 연구팀이 구성돼 이번 책으로 1차 결실을 보게 됐다. 2차, 3차로 이어질 후속 작업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연구와 집필엔 김경일(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김명섭(연세대 정치외교학)·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이남주(성공회대 중어중국학)·임성모(연세대 사학) 교수 등 9명이 함께 참여했다.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 ‘대동아공영권의 이념과 아시아의 정체성’ 등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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