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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메이저리그, 한국투수 저평가 … 문제는 체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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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메이저리그를 꿈꿨던 윤석민(29)은 2015년을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정말 속상할 것 같다.”

 그러나 윤석민에겐 던질 기회가 없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메이저리그 캠프에 초청조차 받지 못한 그는 지난 6일 친정팀 KIA와 4년 총액 90억원에 계약을 맺고 돌아왔다. 프로야구 역대 자유계약선수(FA) 사상 최고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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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윤석민은 볼티모어와 3년 575만 달러(약 63억원)에 사인했다. 2015년엔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는 걸 거부하는 옵션까지 넣었다.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63)의 멋진 작품처럼 보였다.

 그런데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윤석민은 시범경기에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이 겹치며 트리플A팀인 노포크에서 4승8패 평균자책점 5.74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볼티모어는 윤석민을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도 테스트하지 않았다. 성적이 눈에 띄지 않은 선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고 있으니 아예 기회를 주지 않다가 계약기간 중 내보낸 것이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윤석민에게 안전장치가 아니라 독소조항이었다.

 지난 겨울 빅리그에 도전했던 김광현(SK)·양현종(KIA·이상 27)은 입찰 단계에서 실패했다. 류현진(28)을 영입하기 위해 2년 전 LA 다저스는 이적료(2573만 달러·약 285억원)와 높은 연봉(6년 3600만 달러·약 400억원)을 투자했다. 반면 다른 한국선수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상당히 인색했다. 셋은 한때 류현진의 라이벌로 여겨졌던 투수들이다.

 류현진과 그의 라이벌의 차이는 무엇일까.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4선발 안에 들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빅리그 FA보다 싸다는 생각에 여러 팀들이 류현진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했다. 일본의 다루빗슈 유(29·텍사스 레인저스)와 다나카 마사히로(27·뉴욕 양키스)도 그런 경우다. 반면 확실한 주전급이 아니라면 굳이 리스크를 떠안지 않는다. 5선발 후보나 트리플A급 선수는 미국이나 남미에 넘치기 때문이다. 윤석민·김광현·양현종을 보는 미국의 평가는 ‘유망주’였다.

 야구에서는 리그를 옮기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 요인이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에서는 해외 선수를 영입하는 게 상당히 큰 리스크다. 한국에서 7년 이상 뛰었던 선수들에게도 미국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연 162경기를 치르는 건 쉽지 않다. 한국야구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냉정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류현진이 어깨, 다루빗슈와 다나카가 팔꿈치 부상으로 고전했다. 이들은 자국에서 연간 200이닝 정도를 던진 강견(强肩)들이다. 그러나 가장 수준이 높고 플레이가 터프한 메이저리그에선 체력 관리가 쉽지 않다. 부상의 위험성도 크다. ‘류현진 신기루’를 따라갔던 다른 선수들에게 빅리그의 벽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선수가 계약과 동시에 메이저리그 주전급 연봉을 받거나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윤석민의 경우처럼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 한국(또는 일본)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미국에 가고 싶다면 돈을 덜 받을 각오도 해야하고,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길 체력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게 아니라 도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국내에 남는 게 낫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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