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야신이냐, 소신이냐 … 가을에 웃을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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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고친다 야구장. 한화의 스프링캠프를 지휘하고 있는 김성근(73)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 중에도 그의 시선은 그라운드 곳곳을 훑고 있었다. 훈련 장면을 머리에 담아뒀다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의 자세를 교정해줬다. 오전 8시에 시작하는 한화의 훈련은 오후 8~9시가 돼야 끝난다. 점심시간도 따로 없는 빡빡한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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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한화 선수들은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 연습경기가 취소되면 다른 팀 선수들은 가볍게 몸을 푼 뒤 일찍 숙소로 돌아가지만 한화 선수들은 하루종일 그라운드에서 치고 던져야 한다. 오히려 경기를 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마운드에는 투수 한 명, 타석에는 타자 한 명만 들어설 수 있으니까 나머지 선수들이 한숨을 돌린다. 고친다 구장에서 한화 타자들은 여섯 군데로 흩어져 하루종일 배팅을 한다. 불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도 서넛 이상이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100㎏이 넘는 선수가 14명이었는데 지금은 4명뿐이다. 김태균(33)과 조인성(40)도 5~8㎏를 빼서 100㎏ 초반에 진입했다.

 한화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훈련을 치르고 있다. LG 시절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조인성은 “LG 때보다 훈련시간이 더 길다. 정신교육 시간이 줄어든 대신 훈련 시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SK에서 김 감독을 경험했던 정근우(33)도 “한화에서의 훈련이 더 세다”고 했다. 까만 흙에서 뒹구느라 새까매진 유니폼,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선수들의 얼굴에서 ‘지옥훈련’의 실체가 보였다. 김성근 감독은 더 김성근다워졌다.

 딴 팀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삼성 류중일(52), SK 김용희(60), 넥센 염경엽(47), KIA 김기태(46) 등 오키나와에 캠프를 차린 감독들은 각자의 색깔로 팀을 이끌고 있었다. 다만 ‘김성근식 훈련’과 거리를 두는 건 공통적이다.

 류중일 감독은 “우리도 1차 괌, 2차 오키나와 캠프에서 훈련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지옥훈련은 아니다”고 말했다. 열심히 훈련하는 건 좋지만 과로나 부상 위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수비·주루·작전 코치 출신답게 류 감독은 원리원칙과 시스템을 강조한다. 2011년 부임 후 통합 4연패를 이뤄내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그는 김성근 감독이 돌아왔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았다.

 김용희 감독은 “난 스파르타식 훈련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스스로 깨닫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아테네식 훈련을 택했다”고 말했다. 2000년 삼성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15년 동안 2군 감독과 해설위원을 했던 김용희 감독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선수들과 자주 대화하고 선수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훈련량도 많지 않다. 김성근 감독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다.

 염경엽 감독은 “김성근 감독님으로부터 야구에 대해 많은 걸 배웠지만 훈련 방법은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세밀한 야구를 추구하는 건 같지만 염 감독은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컨디션 관리를 강조한다. 매일 경쟁을 붙이는 김성근 감독과 달리 염 감독은 지난해 11월 일찌감치 투수 로테이션과 타순을 정했다. 스프링캠프는 그들을 시험하는 무대다.

 김기태 감독은 20대 선수와 30대 선수를 이원화 해 관리하고 있다. 20대에게 강훈련을 주문하는 반면 30대에겐 오후에 자유시간을 준다. 베테랑들은 자신의 체력과 컨디션에 따라 추가훈련을 하기도 하고, 숙소로 돌아가 쉬기도 한다. KIA는 오키나와 연습경기에서 9전 전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지면서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원칙을 깨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이 SK에 계실 때 다른 팀들이 강훈련을 따라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

 김 감독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어느 어느 팀 분위기가 좋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런데 진짜 좋은 건 이기는 거야. 이렇게 고생해서 이기고, 슬럼프가 오면 그걸 극복하고…. 그게 야구 하는 낙(樂)이야. 힘들다고, 아프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나? 그건 노인이 가만히 누워서 죽는 날 기다리는 것과 같잖아.”

 한화 캠프는 3일 끝난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선수 10여 명과 사흘 더 훈련한 뒤 시범경기 개막 하루 전인 6일 귀국한다. 더 독해진 김성근 감독, 그와 차별화하려는 다른 감독들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보는 게 2015 프로야구 관전법이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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