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바티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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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8년에 걸쳤던 마라톤 협상이 드디어 타결될 모양이다.
이탈리아와 바티칸시국 사이의 협상이다. 이탈리아와 로마 교황청 사이에 체결된 라테란 조약과 거기에 부수된 정교조약 (콘코르다드)을 수정하는 협상이다.
협상은 1976년 이탈리아의 제3차 「안드레웃티」 내각 때 시작되었었다.
협상 과정에서 바티칸 은행이 암브로시아노 은행 도산에 연루돼 있다는 스캔들이 드러났기 대문에 당시 「스파돌리니」 정권은 협상 테이블에서 물러났었다.
그러나 지금 「벳티노 크락시」 수상 정부는 바티칸과의 사이에 이미 타결을 본 조약 초안을 가지고 의회의 비준을 거치고 있다.
이 국가관계에 관한 종교 협약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바티칸은 이탈리아에서 누려온 많은 특권을 상실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은 더 이상 국교일수 없고, 로마는 성도일 수 없다. 이탈리아의 공립학교에서 지금까지 의무적이었던 카톨릭 종교 교육도 선택 수강으로 바뀐다.
더 중요한 건 이혼의 합법화다. 지금까지 이혼은 교회 재판소만이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가졌었다.
카톨릭은 교회 결혼을 해소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혼은 예외적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협약 개정에 따라 이탈리아 국민은 비록 카톨릭 교도라고 해도 교회의 지상권에 따르지 않고 필요하면 이탈리아 국내법에 따라 자유롭게 이혼할 수 있게 된다.
그건 어느 의미에서 이탈리아가 바티칸의 종교적 굴레에서 물려나는 것을 뜻한다. 「크락시」 수상의 표현대로 「시대 착오적 관계」의 청산이다.
하지만 라테란 조약은 이탈리아의 억압에 대한 바티칸의 권리 주장을 담았던 협약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아이러니다.
라테란 조약은 이탈리아 정부가 교회와 교황 제도에 대한 적의를 버리고 교황의 영토권과 제 권리를 인정한 공식문서다.
1929년 2월11일 이탈리아 왕 「빅토르·에마뉘엘」 2세를 대신한 파시스트 지도자 「뭇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를 대신한 「가스파리」 교황청 국무장관이 서명했다.
그 협약에 따라 바티칸은 이 세상에 유일한 신권 정치적·성직 정치적 국가가 됐으며 동시에 영토·국민·정부를 갖는 실제적 국가가 됐다.
라테란 조약은 물론 이탈리아에 대한 바티칸의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특별한 경우 외에는 이탈리아의 치안 통제를 받는 것이 그 전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의무는 엄청나다.
교황을 신성불가침의 사람으로 인정해야하며 추기경들에게도 옛 왕족에 준하는 경의를 표해야 한다.
바티칸의 수입품은 관세를 면제하고 급수·철도·전화·우편도 연결해 주어야한다. 바티칸의 항공기·자동차는 이탈리아 전국을 누빌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절대 안 된다.
라테란 조약의 개정은 큰 나라 이탈리아가 당한 기묘한 불평등 관계의 청산이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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