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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눌변과 노무현 달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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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미 차이 보여준 회견

◆ 부시 대통령과 미국 기자 간 질의응답

▶기자=체니 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어떻게 이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갔느냐'고 추궁하는 것은 비난받을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헤이글 상원의원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애국자"라고 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부시=부통령이죠.

▶기자=왜 그런가요.

▶부시=음… 미국은 반대의견을 존중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의회와 국민을 호도해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일입니다. 의원들은 내가 본 것과 같은 정보를 보고받고 전쟁에 동의해 줬으니까요. 정략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지요. 그러니까 부통령이 맞죠.

◆노 대통령과 한국 기자 간 질의응답

▶기자=노 대통령께 질문하겠습니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일각에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 동맹에 균열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노 대통령=남북 정상회담에 관해 우리는 언제나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쪽은 북쪽 나름대로의 전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핵 문제가 풀리기 전에 만나는 것에 대해 북쪽에서는 유리하다고 판단할지 아닐지에 대해 확실히 판단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쪽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한국이 남북 정상회담 그 자체를 하나의 성과로 생각하고 너무 그것에 매달릴 때 오히려 일의 여러 가지, 북핵 문제나 남북관계 등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하 생략)

준비된 문답 생동감 없어

부시의 회견엔 생동감이 느껴진다. 즉석에서 묻고 답하는 공방전이기 때문이다. 반면 노 대통령의 회견은 딱딱하다. 미리 질문자와 질문 내용이 정해져 있고, 청와대 참모진이 이에 맞춰 답변 참고자료까지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약속대련(맞추어 겨루기)이다. 그래서 추가 질문이 없고 답변이 길었다.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 해프닝도 있었다. 당초 한국 기자 두 명은 노 대통령에게, 미국 기자 두 명은 부시 대통령에게 질문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그런데 미국 기자가 부시에게 질문하다가 갑자기 "노 대통령, 남한은 북한에 많은 원조를 합니다. 이런 정책이 미국의 대북정책과 상충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답변하는 대신 다음 질문자로 정해진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청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통역의 실수'라고 했다. 혹시 약속되지 않은 질문인 탓은 아닐까.

부시 대통령은 말실수가 잦은 눌변이다. 노 대통령은 보기 드문 달변이다. 즉문즉답을 꺼릴 이유가 없다. 기자회견은 의전행사가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는 창구여야 한다. 미리 짜맞춰 둔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오병상 국제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