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보장 먼저…"- "우선 들어 오라" 맞서|해금자와 각당의 미묘한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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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월 추가 해금, 3·1절 해금설 등이 나도는 가운데 1차 해금자의 움직임이 다소 활발해지고 있다.
민한·국민 등 야당도 해금자 또는 추가 해금 대상자로 꼽히는 인사들을 상대로 은밀히 의사 타진을 하고 있다.
정중동의 해금 대기 정국은 12대 총선거와 관련한 각 당의 당세 확대와 개인의 이해 관계 등이 서로 얽혀 가름하기 어려운 암중모색을 보이고 있다.

<호텔서 진로 모색 열중>
1차 해금자들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쪽은 구 신민당 출신 10대 의원들.
황낙주·정재원·박용만·이필선·김동욱·김영배·김윤덕씨 등 7명의 전 의원들은 지난 연말 가칭 「신민주 구락부」를 발족시키려다가 박용만씨의 신중론으로 일단 제동이 걸려 단체 결성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요즘도 L호텔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진로 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황낙주·정재원·김영배씨 등이 매일 출근하고 최근 미국으로 여행간 김윤덕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가끔 나와 의견을 교환한다.
이들이 신민주 구락부를 창설하려 했을 때의 설립 취지는 △재야의 미 해금자를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행동 통일을 한다는 것.
황·정씨 등은 『설립은 안 했지만 이 기본 취지는 아직 유효하다』고 7인의 결속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이 끝까지 행동 통일을 할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 왜냐하면 이들의 진로는 해금정국의 변화, 국회의원 후보 공천 등과 복잡한 함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어느 당으로부터도 무슨 제의를 받은바 없어 입당에 앞선 사전보장을 하라는 단계도 아니다』 (황낙주)라지만 당직·공천 등을 먼저 보장받겠다는 「선 보장·후 입당」의 분위기는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중 민한당의 현역의원과 전혀 경합이 없는 사람은 황낙주 (진해-창원), 정재원 (천안-아산), 김동욱 (충무-통영-거제-유성)씨 등 3명뿐이고 박용만 (영주-봉화), 김영배 (서울 강서), 김윤덕 (나주-광산), 이필선 (광주동-북구)씨 등은 민한당 현역 의원과 경합 관계. 그래서 정재원씨 같은 이는 『제반 여건의 성숙을 살펴야겠지만 민한당 입당에 꼭 부정적은 아니다』 라고 솔직히 털어놓고 있다.

<2차 해금자 문호 열어 놔>
민한당 측에서는 해금자 또는 미 해금자들의 「선 보장」 요구에 못 마땅한 반응들.
유한렬 사무총장은 『범야 세력의 결속을 위해 우선 입당부터 해야할 것이고 입당한 후면 빗장 질러 문닫아 놓고 질식사를 시킬리야 있겠느냐』고 「선 입당·후 보장」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지난 연말 해금 임박설이 퍼지자 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재야 중진 쪽과 기맥을 통하는 등 동요되는 모습을 보여 당 지도부는 이런 사태를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 연초 유치송 총재댁에 모인 신참 의원들이 『해금자들에게 프리미엄을 준다고 떠들썩하니 우리들은 뭐냐』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린 것도 민한당이 선뜻 해금자 영입에 나서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있다.
김현규 정책의장은 『해금 인사들이 2차 해금 전에는 행동하기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그런 입장을 번연히 알면서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가면 그들의 입장만 오히려 난처하게 만들 것』이라고 해금 인사 영입 교섭이 표면화되지 못하고 있는 배경을 설명. 또 만일 1차 해금자를 영입해서 비어 있는 당직을 채우면 오히려 2차 해금자에게 문호를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와 이래저래 엉거주춤한 상태.
그러나 유 총재를 비롯해 이태구·신상우 부총재, 고재청 부의장, 유 총장·김 의장 등은 2차 해금 대상자들과도 꾸준히 접촉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상당한 중진들도 입당 의향을 비춰 『12대 총선거에서도 제1 야당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구 공화 출신과 자주 접촉>
국민당의 경우 이만섭 부총재와 신철균 사무총장이 김재순·김유탁·설인수·이인근·김세배씨 등 구 공화당 인사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의사를 타진 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뚜렷한 의사를 밝히기를 꺼리고 있는데 소식통은 『민정당의 공천 윤곽이 드러난 후에야 분명한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추정했다.
동대문상고 이사장으로 있는 이인근씨는 『당 선택은 아직 결성하지 않고 있다』고 했고, 김유탁씨도 『국민당이건 어디건 제의 받은 바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김영삼씨 쪽 모임에 자주 나타나는 박찬종씨는 『김씨와 만나는 것은 그 생각과 만나는 것』이라는 실명.

<민정도 재야 본격 접촉 지시>
한동안 「커튼 뒤의 역할」만 해오던 민정당도 최근엔 보다 적극적인 관심 표명을 하기 시작.
당 간부와 재야 인사와의 개별 접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구 야당 출신과 언론계 출신 소속 의원들에게까지 구연이 있는 재야 인사들을 만나도록 지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민정당 측은 1차 해금자와 추가 해금 대상자들을 만나 주로 거취 문제와 관련한 의중을 타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의지를 설명하고 빠른 선택을 촉구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민정당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무소속 의원들과 1차 해금자들이 기존 정당에 입당한 후에 2차 해금을 단행하며 △차기 총선거에서 해금자들이 덕을 보고 영웅시되는 사태는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해금의 시기와 폭을 정하고 △해금자들이 단일 세력화하여 기존 정당을 위협하는 신당은 만들 수 없도록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 등.
이종찬 총무는 『나 자신을 포함, 민정당 의원들이 재야 인사를 만난 후 느낀 공통점은 모두 정치를 다시 하려면 민한·국민당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 들어가 공천도 놓치고 스타일만 구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더라』고 전언.
민정당의 재야와의 접촉으로 일부에서는 구 야권의 미 해금 인사 일부가 민정당에 수용될 것으로 추측하지만 재야의 한 인사는 『과거 신민당 인사 중 두문불출 중인 2, 3명을 제외하고는 민정당 입당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
해금 시기에 대해서는 2월 중순 해금이 안되면 훨씬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해금이 돼야 해금·미 해금자의 움직임과 영입 교섭도 표면화될 것 같다.

<구 여 출신 일부 정치 절연>
작년 2·25 1차 해금에서 풀린 전 의원은 공화당 출신이 34명, 유정회 8명, 신민당 17명, 기타 9명 등이었다. 이중 김우경 (공화·(주) 콜럼비아), 이진용 (공화·정우 금속), 임인채 (공화·협진 건설), 정무식 (공화 목욕탕), 이필선 (신민·대흥 플라스틱)씨 등이 사업을 벌이고 있고 김재식·설인수·오용운·오준석씨 등은 목장을 하고 있다.
김봉환 (공화), 박찬 (공화)씨 등은 변호사로 그대로 일하고 있고 황낙주 (신민·진해 서여중-여상 재단 이사장), 이인근 (공화·동대문중-상고), 오중렬 (공화·전남 광산금북중), 심종직 (공화·서령학원)씨 등은 육영 사업을 계속.
정판국씨 (공화)는 한국 동양난 연합 회장으로 있고, 김경인씨 (통일)는 서울에 서예원을 차렸다.
과거 야당 출신들은 대개 정계 복귀를 공언하고 있지만 여당 출신은 비교적 신중하게 정세를 관망하고 일부는 완전히 정치 절연을 선언해 대조적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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