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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모바일 송금에 딱 10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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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를 박차고 ‘비바리퍼블리카’를 창업한 이승건 대표(가운데)가 동업자들과 함께 최근 출시한 모바일 송금 앱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김경빈 기자]

아직도 한국에선 온라인 결제는 ‘통곡의 벽’이다. 결제 단추를 누른 뒤 액티브X를 설치해야 하고 여기에 바이러스 백신,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 등 설치해야 할 프로그램이 한 두개가 아니다. 카드번호를 입력해도 또다른 난관에 부딪힌다. 문자메시지(SMS)나 공인인증서로 본인 인증을 해야할 뿐더러 걸핏하면 오류가 나서 ‘도돌이표’ 마냥 다시 처음 단계로 돌아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천송이 코트’ 사례를 꺼내들어 직접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를 없애라고 한게 올 3월이지만, 미국 아마존처럼 결제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만사 OK’되는 서비스는 아직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10초 만에 돈을 보낼 수 있는 간편 송금 서비스가 생겼다. 비대면 본인 인증 금지, 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금융감독원 규준, 산업 자본의 금융 분야 투자를 막는 ‘은산분리’ 등 미로같던 각종 장벽을 뚫고서 말이다. 지난달 25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놓고 ‘토스(toss)’ 서비스를 시작한 이승건(33) 비바리퍼블리카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기존 11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송금 절차를 ▶보낼 금액 ▶받는 사람 전화번호 ▶암호 입력 등 단 3단계로 줄인게 토스의 특징이다. 배구에서 공을 가볍게 넘기듯 기존의 복잡한 절차 없이 사람들이 간편하게 송금 서비스를 쓸 수 있는 셈이다.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때나 공과금을 납부하는 등 가상계좌를 이용한 무통장 입금 때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지금까진 단돈 1000원을 보내려 해도 은행마다 각기 다른 앱을 깔고, PC로 인터넷뱅킹 사이트에 접속해 공인인증서를 스마트폰에 복사해야만 했다. 송금 한도는 횟수에 관계없이 하루 30만원이다.

송금하는 사람만 앱 깔면 서비스 가능

 1982년생인 이 대표는 4년 전만 해도 치과의사였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출신(01학번)인 그가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2010년 ‘아이폰 4’를 접하면서다. 이 대표는 “초·중학생 시절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원래 의사보다 공학도가 되고 싶었다”면서 “세상을 바꿔놓은 아이폰이 내 안에 있던 ‘공학도적 꿈’을 다시 불러일으킨 셈”이라고 말했다. 2011년 4월 20일 공중보건의에서 소집해제 되자마자 그는 바로 창업을 실행했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결합)’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3년 11월이다. 2011년 처음 개발한 인터넷 투표 앱은 시장 수요가 적지 않았지만, 다른 IT 대기업이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면서 1년여 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돈 들어올 데가 없다 보니 월급을 못 줄 때도 허다했다. 실패를 거듭하던 중 이 대표는 핀테크에 도전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아마존 같은 원클릭 결제 서비스를 만들면 돈도 벌 수 있을 뿐더러 사회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2년 간 인터넷 투표 서비스를 운영하며 쌓은 기술력만은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이 당시 국내에선 아직 핀테크의 개념조차 알려지지 않을 때였다. 그는 “핀테크에 척박한 ‘한국적 규제 토양’ 때문에 1년을 꼬박 소비했다”고 머리를 저었다. 사실 그는 지난해 3월 간편결제 베타 서비스(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한 달만에 사용자 5000명을 모으기도 했다. 다음카카오가 만든 ‘뱅크월렛카카오’는 돈을 받는 사람도 송금 앱이 설치돼 있어야 하는 반면, 이 대표가 개발한 토스는 송금하려는 사람만 앱을 설치하면 10초 만에 계좌이체가 가능하다.

 서비스가 입소문을 탔지만 이 대표는 5주 만에 베타 서비스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핀테크를 몰랐던 금융 당국이 ‘핀테크=금융 사고’로 판단해 시중 은행에 관련 거래내역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은행이 아닌 제 3자가 만든 앱을 통해 금융 거래가 일어나자 우선 ‘금전사고’ 부터 의심한 까닭이다.

시범 서비스 한 달 만에 사용자 5000명

 낡은 은산분리 규정도 이 대표를 힘들게 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사 16곳에서 투자 제의를 받았지만 결국에 실제로 투자 받은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에 따르면 투자회사는 예외조항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에는 금융 관련 벤처에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핀테크 사업을 하는 이 대표 입장에서는 고사 직전까지 몰린 셈이다. 결국 이 대표를 구한 건 미국 실리콘밸리였다. 미국계 벤처투자사 ‘알토스벤처스’가 이 대표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즉석에서 100만달러(약 11억원)가 넘는 금액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

 천신만고 끝에 그는 올 2월 토스 정식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달 내로 안드로이드뿐만 아니라 아이폰에서 쓸수 있는 iOS 용 앱을 출시할 예정이다. 5년 안에 온라인 결제 이용자를 최소 30만명, 최대 100만명을 확보하겠다는 게 비바리퍼블리카의 목표다. 이 대표는 “무통장입금과 실시간 계좌이체 전체 시장규모인 15조원 중 1%만 해도 1500억원”이라며 “목표대로 된다면 충분히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토스의 경우, 송금 횟수 건당 수수료를 받는게 아니라 송금을 통해 수익을 얻는 가맹점(음식점·상점 등)으로부터 수수료를 얻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수수료 부담이 전혀 없는 서비스다.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인 박광수(33)씨, 네이버 입사를 포기한 이태양(28)씨 같은 든든한 동업자들이 있는 것도 큰 힘이다. 사실 다른 멤버들도 이 대표만큼이나 이력이 독특하다. 모바일용 앱 개발담당 박 씨는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에서 사표를 쓰고 왔고, 이씨는 대학 4학년 때 공대생들의 ‘로망’인 네이버에 합격했지만 곧장 비바리퍼블리카를 선택했다. 공동창업자인 양주영(35)씨는 부산과학고와 KAIST를 졸업하고 엠파스, SK플래닛 등에서 일하다 합류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에게 다시 치과의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과 동기들은 벌써 개업도 하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지만, 다시 돌아갈 일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저는 기업가입니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그결과로 나 스스로도 풍요로워지는게 기업가로서 제 임무이자 사명이에요. 30년 뒤 페이팔, 테슬라모터스, 스페이스X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처럼 인류 생활에 보탬이 되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글=김영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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