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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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 30주기인 20일 프랑코의 묘역을 찾은 한 지지자가 파시 스트식 경례로 추모하고 있다. [로스 카이도스 AFP=연합뉴스]

20세기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사진) 장군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20일 프랑코 사망 30주년을 맞아 스페인 전역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특히 마드리드 북쪽에 있는 그의 묘역에는 6000여 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 프랑코 지지자들은 마드리드 시내에서 그의 묘역을 성역화하고 철거된 동상을 복원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날 밤에는 마드리드 시내 오리엔테 광장에서 시위가 있었다. 오리엔테 광장은 프랑코가 생전에 대중연설을 즐겨했던 장소로 우파에겐 성지와 같다.

프랑코에 대한 추모와 향수는 스페인 사회의 보수화 분위기를 반영한다. 장군이었던 프랑코는 1936년부터 39년까지 계속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민주적으로 수립된 좌파 공화정부를 전복했다. 이후 36년간 파시스트 정권을 이끌며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독일.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의 도움으로 집권해 가까운 관계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덕분에 스페인은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 전후 친미 외교정책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우파가 프랑코를 칭송하는 이유다. 그러나 프랑코는 철권통치 과정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특히 분리독립을 주장하던 바스크와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분리독립파는 테러로 맞섰다.

프랑코 사후 정권의 야만성이 드러났지만 과거사 청산 노력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현 사회당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스페인 정부는 독재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애써 외면했다. 과거를 보기보다 미래를 보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본격적인 과거사 청산 노력은 좌파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가 정권을 잡은 지난해 초 시작됐다. 사파테로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는 프랑코 독재 시절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실규명 작업에 들어갔다. 진상규명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최근에야 민간단체들이 공화군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조사를 위해 공동 묘지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과거사 청산이 쉽지 않은 사회적 배경의 하나가 프랑코에 대한 추모 분위기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 진상규명에 나서자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스페인 서점가에서는 프랑코를 찬양하는 책이 베스트셀러다. 저변을 흐르던 추모 분위기가 그의 사후 30주기를 계기로 표면화됐다.

최근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측과 프랑코 지지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은 프랑코 기념물이다. 지난해엔 동상 철거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지난해 초 좌파 정권이 프랑코 동상 철거를 시작했을 때 프랑코의 딸 카르멘 프랑코 폴로가 이끄는 프란시스코프랑코재단(FNFF)은 물론 보수야당인 민중당까지 반발했다. 홍역을 치른 끝에 동상이 철거되자 프랑코를 비난하는 측에서는 프랑코의 무덤을 다시 도마에 올렸다.

프랑코 묘역은 공화군 포로 1200명의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코 비판자들은 그의 묘역을 역사교육센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치의 만행을 반성하는 생생한 교육현장으로 변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모델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코 추종자들은 오히려 그의 묘역을 성역화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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