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유창혁, 대마 총공격으로 승세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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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유창혁 9단(한국) ● . 박문요 4단(중국)

지금부터 17년 전인 1988년, 유창혁은 조훈현 9단의 대마를 잡고 대왕 타이틀을 따냈다. 서봉수를 제외한 기사가 조훈현을 격파한 것은 근 15년 만의 대사건이었다.

유창혁 9단의 공격바둑은 독보적이다. 멋도 있다. 다만 공격이 탁월한 수읽기에 대세관과 배짱을 겸비해야 하는 힘든 종목임에 반해 승률은 높지 않은 까닭에 공격 계보를 잇는 소년 강자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소년들은 자연 성적이 좋은 쪽의 바둑을 닮으려 애쓴다. 그러나 39세의 유창혁은 요즘 젊은 강자들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장면1=박문요 4단이 171로 잡자 유창혁 9단은 176으로 하변을 굳힌다. 의외로 미세한 국면이다. 끝없는 공격으로 판을 리드해 온 유창혁 9단이지만 칼날의 예리함이 예전만 못해 몇 번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고 여기까지 왔다.

177은 강수다. 이 수로 A에 둔다면 대마는 확실히 산다. 그러나 후수를 잡아 B나 C를 당한다면 덤을 내기 어렵다. 177은 '참고도'처럼 백이 고분고분 받아준다면 선수를 잡아 우변을 지키려는 것. 도박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 수다.

장면2=판세를 면밀히 살핀 유창혁 9단은 178로 과감히 칼을 빼들었다. '대마불사'라는 격언에도 불구하고 대마를 몽땅 잡으러 가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다. 180에서 186까지 흑의 집 모양은 지워졌다. 이제 대마는 하변 쪽에서 살지 못하면 죽는데 이곳도 190으로 희망이 사라졌다.

그래도 대마는 꿈틀거리며 하변 백 속으로 움직였고 결국 살았다. 다만 흑?들이 잡혀 바둑은 백의 불계승. 공격의 유창혁이 왕년의 풍모를 여실히 보여준 한판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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