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없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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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두환 대통령은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 폭력」을 국정의 기조로 한다는 내용의 새해 국정 연설을 했다.
전 대통령은 폭력 배제의 기조를 대외적으론 폭력 없는 세계 질서의 구축, 대내적으론 폭력에 의하지 않는 민족 통일, 폭력 없는 정치, 폭력 없는 사회의 구현이라고 제시했다.
국정의 중심 개념을 「반 폭력」으로 설정한 것이 랭군 참사, KAL기 피격 사건에서 얻은 뼈저린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 대통령의 말대로 이 두개의 사건은 『폭력에 대한 증오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지고의 신앙으로 굳히고도 남음이 있을』 민족적 시련이며 임기였다.
우리가 직접 겪은 두가지 사건 말고도 지금 세계는 전쟁, 무력 개입, 혁명 수출, 군비 경쟁, 폭력 탄압 등으로 열병을 앓고 있다.
중동을 비롯해서 세계 도처에는 전란 유발의 불씨가 도사리고 있는데도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강대국들은 겨우 자국의 권익 유지에만 급급할 뿐 이렇다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정세 하에서 랭군 테러를 직접 겪은 한국의 국가 원수가 폭력 배제를 주장, 모든 나라에 대해 과감한 개방과 협력을 선언한 것은 국제적으로 상당한 공감을 얻을 것으로 평가된다.
전 대통령은 국내 정치 문제에도 언급, 지난날 역대 정부가 한번도 당초의 약간을 지킨 일이 없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의 선례를 남긴 적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폭력 없는 정치야말로 민주주의 토착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물리적인 폭력 뿐 아니라 폭력을 유발하는 선동이나 그런 사고, 부패와 혼란까지도 폭력의 개념에 포함시킨 것은 12대 총선, 정치 해금 등 올해에 있을 중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천명되었다는데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전 대통령의 「반 폭력」선언은 선거철에 나오기 쉬운 유언비어, 중상 모략, 인기 전술 등에 대해 사전 경고하는 뜻도 있지만, 제적 학생들의 복교, 정치 해금 후에 있을 장외 정치 및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 쐐기를 박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 대통령이 주창한 「폭력 없는 정치는 결국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보강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평화적인 정권 교체에 저해 요인이 되는 「폭력」에는 소신 있게 대처한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의 선례를 남기는 것이 『본인의 개인적인 꿈을 달성하는 영광』이라고 한 대목에서 우리는 전 대통령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꼭 실현하겠다는 결의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아무리 간절하다해도 그것이 우리의 것으로 정착되는데는 많은 시일과 과정이 필요함을 우리의 헌정사는 실증하고 있다.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은 한마디로 이런 이치를 바탕으로 자신에 의해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전통만은 기필코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란 말로 집약할 수 있다.
장기 집권을 위한 무리와 이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악순환을 거듭한 과거의 정치사적 비극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집권 세력은 언제고 야당이 될 수 있다는 각오를 갖고 정치를 운영해야할 것이며, 반대 세력 또한 극한적인 반항보다는 대화와 화합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전 대통령은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폭력을 배제한, 평화적 해결의 대 원칙을 재확인했다. 아웅산 테러를 저지른 북괴가 적화 통일의 야망을 포기할 기미는 아직 없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괴와의 대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통일이 민족적 지상과제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북한이 회개하지 않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 도발을 계속할 때에는 『재기 불능의 응징을 사양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평화적인 대화 노력은 계속 추구하되 거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현재 국정의 최대 목표인 「선진 조국의 창조」를 위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정치 의식의 선진화임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특권 의식·독선·한탕주의·이기주의는 어느 것이건 조국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요소들이 아닐 수 없다.
전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 담긴 긍정적 요인들이 차근차근 뿌리를 내려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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