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20일경주방폐장선정] 고준위 핵폐기물 '진짜' 는 손도 못 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원자력 발전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은 10월 15일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하 방폐장) 건설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홍보를 전면 중단했다. 11월 2일 있은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문제는 투표가 끝난 다음에도 '홍보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방폐장 문제를 끝낸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경주에 들어설 방폐장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일 뿐이다. 정작 훨씬 심각한 고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는 아직 본격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은 크게 '사용후 핵연료'(원자로에서 태우고 남은 연료) 같은 고준위와 원전 종사자의 작업용 장갑.옷 같은 중저준위로 나뉜다. 고준위 폐기물은 중저준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이런 고준위 폐기물을 한곳에 모아 저장할 시설이 국내엔 아직 없다. 그래서 원전마다 임시 보관하는 미봉책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임시보관소도 곧 저장 능력이 바닥난다. 내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해 2008년이면 모든 원전의 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돼 있다. 촘촘히 저장해 최대한 저장량을 늘린다 해도 원전에 따라 2016~2021년까지만 버틸 수 있는 상황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불씨가 남아 있는 거뭇거뭇한 연탄재에 비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붕소를 탄 격자 구조의 수조(水槽)에 특별 보관해야 한다. 이를 보관할 곳이 없으면 원전 가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 '방폐장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선진국은 쓰고 남은 연료를 재처리해 쓰거나, 아니면 몇 겹으로 밀봉해 땅속 깊이 묻거나 하는 방식을 10~20년에 걸친 치밀한 연구를 통해 정한 뒤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의 첫 단추인 '재처리냐, 매립이냐'조차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원전사업기획단 관계자는 "중저준위 원전수거물관리센터에 사용후 핵연료를 대량으로 한곳에 모아 놓을 중간 저장소를 지으려고 했으나 지난해 두 가지를 분리해 처리하기로 한 이후 아직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대해서는 정책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유치한 지자체에 외국에서는 선례가 없을 정도의 많은 혜택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고준위처리장 선정 때에는 비용 부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