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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인 그리고 장신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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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신구에는 모든 예술작품이 가진 미적.보존적 가치 외에 태어난 곳의 '한(恨)의 지도'가 추가로 들어 있다. 그중에서 아프리카 장신구는 다른 어느 곳보다 복잡다단한 한의 켜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술은 20세기 초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줬고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샘물을 공급해 주고 있다. 그곳의 장신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장신구 제작에서 그들은 훨씬 더 자유로워져 무한히 확장된 이미지를 펼친다. 엽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대담함, 재료 선택의 다양함, 무자비할 만큼 생략해 표현한 추상성 등을 장신구를 통해 쏟아 놓는다. 당연히 가장 초현대적인 조형미를 주체하지 못해 저만치 혼자 앞서가 기다리는 때도 많다. 수세기 전에 만들어진 아프리카 장신구에서 지금의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나 다가오는 시대를 일러줄 말미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아프리카는 질병.가난.내전 등 지구가 짊어지고 가는 짐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곳이다. 반면 장신구는 그지없이 화려하고 찬란해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아릿한 통증까지 느끼게 된다. 그들의 장신구가 역설적인 대비의 아름다움과 비극미(悲劇美)의 극치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장신구를 착용했던 아프리카 사람들, 특히 여인들의 고단하고 열악한 삶은 상상을 초월한다.

생활의 기본인 물과 불을 얻기 위해 매일 몇 시간씩 먼지 날리는 흙길과 험한 산길을 맨발로 다녀온다. 게다가 각 종족의 뿌리 깊은 전통은 모두 남성우월주의를 염두에 둔 것이어서 여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하고 불공평하다. 과중한 노동 외에 여성의 성적 쾌감 제어장치인 할례의식, 입 하나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행해지는 10대 초반의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부작용인 'Fistula'(방광과 질에 생긴 누공)는 수많은 여성의 삶을 10대도 넘기 전에 꺾어 버리기도 한다. 지금 아프리카 대륙을 황폐화하고 있는 에이즈의 가장 큰 피해자도 여성들이다. 이곳 대부분의 국가가 여성의 건강을 위해 책정한 예산이 일인당 연 5달러 내외니 정책적 제도장치 마련은 멀고도 먼 얘기다.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는 30대 초반으로 나이도 어렸지만 주위의 어려움에 큰 관심을 쏟지 못했다. 그러나 10년 뒤 다시 가서 살 때는 그럴 수 없었다. 특히 여인들의 참혹한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바자와 음악회 개최 등으로 기금을 마련해 여성 전용 병원과 할례 희생자를 돕는 데 조그만 힘이나마 보탰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고 했듯이 아프리카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은 저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듯이 그들의 심성이나 사고도 문명의 물결이 피해 갔기 때문일까. 한없이 순수하고 따듯해 그들 앞에 서면 오염도가 금세 드러날 정도로 무공해 품성을 간직하고 있다.

끼니를 거르면서도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장신구는 절대 팔지 않으려는 그들을 꼬드기고 설득해 얻은 장신구가 이번 전시회를 더욱 빛나게 했다. 가을 내내 앓은 마음의 몸살은 그곳 여인들의 혼(魂)이 자기의 장신구를 만나러 왔다 그들의 숙련된 솜씨로 내 마음에 문신도 새기고 상흔도 내면서 한바탕 한의 잔치를 벌이고 돌아간 때문은 아닐까.

이강원 시인·수필가 세계장신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