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 지닌 범인, 입장 때 아무런 제지도 안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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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코앞인데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하는 동안 경찰은 뭘 했나.’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기사에 달린 온라인 댓글이다. 시민들은 범인이 칼을 소지하고 조찬 강연장에 들어가 범행하기까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것을 놓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관련 법률상 미국 대사는 경호 대상이 아니다. 다만 대사관 측의 요청이 있을 때 경호를 지원한다. 그런데 미 대사관 측은 이날 리퍼트 대사에 대해 경호 요청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미 대사관이 보안을 이유로 리퍼트 대사의 일정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이날 오전에 통보했다”며 “리퍼트 대사의 경호는 미 대사관 보안과에서 자체적으로 담당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종로경찰서장의 판단으로 리퍼트 대사가 참석한 세종문화회관 행사장 안팎에 기동대 1개 대대와 정보·외사 형사들을 배치했다. 참석자들의 신분과 소지품 검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범인 김기종씨가 25㎝ 길이의 과도를 소지한 채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경찰력을 배치한 것이어서 행사 주최 측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나 미 대사관에서 요청하지 않으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참석자를 수색하긴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민화협으로부터 행사 초청장을 받았다. 김씨가 1998년 조직한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의 대표 자격이었다. 하지만 사전에 참석의사를 밝히지 않아 명찰이 없었다고 한다. 경찰이 “(김씨가) 입장해도 되느냐”고 묻자 민화협 실무자가 김씨에게 이름표를 써주고 입장을 허가했다.

 민화협 측은 “2004년부터 미국 대사가 부임하면 의례적으로 초청강연을 해왔는데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어서 특별히 경찰에 경호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를 초청한 것에 대해서는 “회원 단체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리퍼트 대사 ‘경호 대상자’ 지정=경찰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리퍼트 대사를 ‘요인 경호 대상자’로 지정했다. 리퍼트 대사에게 4명, 대사 부인에게 3명의 경찰관을 경호요원으로 배치했다. 외국인이 대상자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성운·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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