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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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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상선
김상선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이혜훈(50)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자타공인 ‘원조 친박(親朴)’이다. 10년 넘는 정치인생의 대부분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말 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국회가 늑장 통과시키는 바람에 부동산 3법이 불어터진 국수 꼴이 되고 말았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 부동산 3법이 경제를 살리는 묘약이 아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친박의 반란인가, 각개약진인가.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3일 서울 서소문에 있는 본사 대회의실에서 이 전 최고위원을 만났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냉혹한 정치현실에도 불구하고 정치 참여를 후회한 적은 없다”며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래도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불어터진 국수 발언’의 후유증은 없었나.

 “(웃으며) ‘협박’을 많이 받았다.”

 -무슨 협박?

 “그냥 두지 않겠다느니, 공천은 끝났다느니 하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전해 들었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일종의 ‘탈박(脫朴)’ 선언 아니었나.

 “그런 얘기를 이제 와서 처음 한 거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그런 소리를 했다. 인수위 보고서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이 빠졌을 때부터 비판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친박’인가.

 “물리적 거리가 기준이라면 친박으로 분류되기 어렵겠지만 애정의 정도로 본다면 누구보다 친박이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독대한 적 있나.

 “없다.”

 -전화 받은 적은?

 “없다. 당선된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인간적으로 서운한 감정도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인데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럴 줄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알았기 때문에 그래도 서운함이 덜하다.”

 -언제 알았나.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르면서다. 인간적 정리를 끊지 못해 실수하고, 눈감고 넘어가다 일을 키우는 정치인들을 많이 봤는데 박 대통령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은 지도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대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박 대통령 개인의 절실한 필요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인간적 정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 아닐까.”

 -박 대통령의 인간적 매력 포인트는?

 “살인미소다. 당 대표 시절 거친 토론 끝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다음날 살인미소 하나로 깨끗이 제압하는 걸 여러 번 봤다. 더 많이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가장 큰 약점은?

 “사람을 만나는 횟수와 폭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점 아닐까. 얼굴을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공식 루트를 통한 보고도 중요하지만 술자리나 밥자리에서 편하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훨씬 중요하고 정확한 정보가 들어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으면 제한된 정보밖에 못 듣는다.”

 -박근혜 정부 2년이 지났지만 왜 대통령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어떤 정부든 당선 후 인수위 활동이 마무리되면 임기 중 어떤 개혁을 어떻게 하겠다는 로드맵이 나오는데 이 정부는 그게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공기업 개혁 얘기를 안 하다가 집권 1년차 말 철도파업이 일어나자 그제서야 공기업 개혁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공기업 개혁은 보수정부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최우선적 개혁 과제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만큼 어려운 게 어디 있나. 당연히 가장 힘이 있는 임기 1년차 때부터 밀어붙여야 한다.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의에 비해 준비는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박정희 정부 버전 2’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때와는 패러다임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때 방식은 작동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그걸 깨우쳐 줘야 할 참모들 자신이 너무 ‘올드’한 것 아닌가.

 “디지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좀 있어야 하는데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시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보기에 박 대통령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물 같은 존재다. 주변에 어떤 참모가 포진하느냐에 따라 국정운영 기조에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이 20명의 전문가들에게 박근혜 정부 2년을 평가하라고 했더니 평균학점이 D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어떤 평점을 주겠나.

 “국민의 일반적 생각과 거리가 있다면 내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웃음)

 -하나라도 잘 한 건 없나.

 “(웃으며) 찾고 있는 중이다.”

 -불통도 문제지만 무능이 더 큰 문제란 지적도 있다.

 “더 중요한 건 소통 아닐까. 어차피 콘텐트는 참모, 즉 테크노크라트들로부터 빌릴 수밖에 없다. 균형 있게 사람을 골라 얘기를 듣고, 그중 어떤 것이 민심에 가장 근접한 얘긴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

 -인사 실패의 원인도 결국 불통 때문인가.

 “그렇다고 본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 더 많은 얘기를 들으면 국민이 보기에 훨씬 만족스러운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기 비서실장 인사를 어떻게 보나.

 “정보기관의 장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 실장 개인은 열려 있는 분이고, 국정 경험도 풍부한 분이지만 인사를 할 때는 기관의 위상도 고려해야 한다. 국정원장이 비서실장으로 가면 국정원의 위상은 어떻게 되나.”

 -여당 국회의원 3명을 대통령 정무특보로 임명했는데.

 “3권 분립의 기본을 뒤흔드는 매우 잘못된 인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청 갈등이 심화되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걸 꼭 나쁘게 볼 건 아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됐으면 당이 당연히 견제를 해야 한다. 그러나 공천과 관련한 당·청 갈등은 다른 문제다. 청와대가 공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개입하는 징후가 보이면 당연히 당이 견제해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할 수 있을까.

 “속된 말로 누구 빼고 다 바꿀 정도로 바꾸지 않으면 처참한 패배를 맛볼 수 있다고 본다.”

 -더 바꾸고 말고 할 게 있나.

 “그동안 말로만 바꿨지 본질은 못 바꿨다. 외피가 아니라 본질을 바꿔야 한다.”

 -본질이라면.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가진 걸로 비치는 당 지도부 한두 사람 또는 청와대 눈치 보면서 거수기 노릇 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지역구민의 대표로서 양심과 철학에 따라 표결하고, 소신껏 발언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한다.”

 -김무성·유승민 팀이 해낼 수 있을까.

 “누구보다도 잘 해 낼 가능성이 큰 커플이라고 본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보나.

 “굉장히 긴장된다. 여론조사로 총리 후보 인준 문제를 결론 내자고 한 것은 대통령 후보는 고사하고 일개 국회의원 자질도 의심케 하는 엄청난 실책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만큼 홈런을 많이 치고 있다.”

 -홈런이라고?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3자 영수회담도 국민 눈에는 문 대표가 이뤄낸 걸로 비친다. 또 천안까지 가서 유관순 열사 묘역에도 참배했다. 마치 애국우파처럼 보인다. 애국과 거리가 먼 것 같은 이미지가 좌파의 최대 약점이었는데 문 대표가 확실하게 실점을 만회하고 있다.”

 -그 때문에 손해 보는 것도 있지 않을까.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종합점수다.”

 -부동산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다.

 “단기적인 착시 효과일 뿐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주도의 투자와 수출이 우리 경제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었지만 지금은 그 동력이 거의 꺼졌다. 투자가 줄고 있는 데다 투자를 해도 일자리가 안 느는 고용 없는 성장시대다. 민간 소비를 진작하는 데서 새로운 동력을 찾는 수밖에 없다. 빚 내서 집 사게 하는 부동산 정책이야말로 민간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써 장기적 성장동력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반적인 정책 방향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의 문제는 성장보다 분배에 있다. 올해도 3.8% 성장한다지 않나. 우리 같은 발전 단계에서 중국과 같은 7~8% 성장은 불가능하다. 3~4% 성장이면 잘 하는 거다. 성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민간의 소비 여력은 줄어드는데 수출 대기업에는 수백조원의 유보금이 쌓여 있는 불균형이 문제다. 이 불균형 문제를 풀어야 성장 문제도 풀린다. 성장 위주의 정책은 성공하기도 어렵고, 성공해도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집권 3년차에 경제혁신이니 구조개혁이니 하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해방 이후 지난 60년 이상 거론돼온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들어가 있다. 그걸 다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느 것도 안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시급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24개 핵심 과제를 제시하지 않았나.

 “어느 것 하나 한 정부 임기 내 이루기 만만한 과제가 없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왜 없던 일이 됐을까.

 “박 대통령이 당에 있을 때는 주변 참모들이 경제민주화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래서 공약에는 포함됐다. 하지만 당선 이후 참모진이 완전히 바뀌었다. 재벌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재벌들이 수십 년간 반복해온 논리는 똑같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일단 경제부터 살려놓고 수술을 하더라도 하자는 논리다. 경제활성화와 경제위기론을 내세워 항상 재벌개혁을 회피해 왔던 사람들이 주변에 포진한 결과 대통령도 그 논리에 설득된 게 아닌가 싶다.”

 -경제민주화로 경제를 살릴 수 있나.

 “사라진 ‘낙수(落水) 효과’의 복원이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정책 패키지의 근본 취지다. 경제민주화 없이 경제활성화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랫목과 윗목을 연결하는 파이프가 고장 나 아랫목 온기가 윗목으로 전달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불만 때는 꼴이다. 그러면 아랫목 장판만 탄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김상선 기자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

1964년 6월 부산 출생. 82년 마산제일여고 졸업. 8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93년 미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경제학 박사. 94년 미 랜드(RAND)연구소 연구위원. 96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2004년 17대 국회의원(한나라당·서울 서초갑).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후보 대변인 겸 서울지역 선대위원장. 2008년 국회의원 재선. 2012년 새누리당 최고위원. 2014년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후보. 2015년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인터뷰 후기] "세상 바꾸는 건 정치"

그는 말을 참 잘했다. 어떤 질문에도 간결하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중언부언하는 법이 없었다. 훌륭한 인터뷰 대상이었다. 한 시간 반 남짓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것은 그의 정치 의지였다.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뜻을 분명히 했다. 2012년 19대 총선 공천 탈락의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음 총선에서는 기필코 3선 고지에 올라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정치를 계속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자기 목소리를 못 내거나 자기 목소리를 대신해 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런 세상을 바꾸는 데 정치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지 않나요.” 그는 연구소에서 정책 자문을 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문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하고 직접 정치를 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힘 있는 사람이나 가진 자의 대변자가 되는 것만큼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은 없다”며 뜻 모를 눈물을 흘렸다. 툭 하면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수도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