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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감 느끼는 일거리를 찾는다|그룹인터뷰|육체적인 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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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현대사회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려 쉬운일이 아니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혼돈, 거기서 뿌려지는 불안과 자기상실감, 출세를 향해 정신없이 치닫는 경쟁레이스, 개성을 몰수하고 인간을 기호화하는 대량처리 시스팀, 이런 정신환경속에 인간은 정신적 상해를 당하면서 물질만능의 정글속으로 무너지려하고 있다. 공허하기만한 정신적 삶의 빈 창고를 건강식이나 운동과잉이 채워줄 수는 없다.
서울 청담동 D종합헬드클럽-. 지하3층, 지상11층, 연건평 2천5백여평의 건물전체가 사우나와 헬드시설로 꽉 차 있다.
단일 목욕탕으로는「세계최대」규모.
3층 헬드장.
상오인데도 20여명의 중년들이「건강관리」에 여념이 없다. 『하나, 둘, 하나, 둘.』구령을 부르며 65m 트랙을 열심히 뛰는 한쪽에서 바이크(제자리 자전거 운동기구)를 타고 쳇바퀴를 돌리느라 비지땀을 쏟는다.
1대에 3백만원을 주고 들여왔다는 미제 전신운동기구에 거꾸로 매달려 용틀임을 하는 비만증 중년도 눈에 띈다.

<몬도가네식 강정식>
『석달쯤 됐읍니다. 사실 운동이 필요하다, 필요하다 하면서도 그게 어디 쉽습니까 40을 넘으니까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이게 제일 쉽더군요. 각종 운동시설과 목욕·휴식 등 편의시설이 한꺼번에 갖춰져 있어서 나같이 바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제격이에요. 준비없이 아무때나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망년회다 뭐다 과음한 다음날 한30분 운동을 하고 사우나로 몸을 풀고 나면 숙취가 말끔히 가시고 온몸이 가뿐해져요.』
트랙을 5바퀴 돌고 나와 땀을 닦는 김중석씨(43·사업·서울 서초동 삼익아파트)는 돈은 들지만「쉽고 편리해서」헬드클럽을 택했다고 했다.
이 클럽의 또하나 자랑은 2억원짜리 라돈발생기틀 설치한 인공 라돈온천. 고혈압·당뇨 등 각종 성인병에 특효가 있다고 선전한다.
총 시설비 43억원이 들었다는 이 헬드클럽의 입회비는 3백90만원.
서울의 헬드클럽 가운데는 이보다 더 비싼 곳도 있다. 최고가 L호텔의 입회비는 5백90만원, 연회비 39만원.
그런데도 1천명 정원이 꽉차 골프장처럼 회원권에 프리미엄까지 형성되고 있다.
70년대 이후 부쩍 높아진 우리사회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10여년 만에「세계최대」사우나시설을 갖춘 헬드클럽을 서울에 출현시켰고, 「건강산업」을 가장 유망한 업종의 하나로 손꼽게 만들었다.
전국에 3천여곳, 서울에만 3백여곳을 헤아리는 헬드클럽 외에도 각종 건강식품제조·판매업·건강관계강습·도서출판이 붐을 이루고 있다.
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건강에 관심을 쏟고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추세. 바람직한 현상이기도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의 건강관리열은「세계최대 사우나」처럼 어딘가 방향이 빗나간 느낌이다.
그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몬도가네」를 연상케 하는 이상 강정식붐.
『정력에 좋다』는 한마디에 뱀·자라·지렁이·개구리·지네·개미·굼벵이·멧돼지·고양이·개·흑염소, 심지어 산모의 태반까지 식용이 되고있다.
서울근교에는 식용 지렁이를 양식하는 비닐하우스가 곳곳에 생겨났고, 지렁이가 용으로 승격, 「토룡정」「토룡환」등 지령이 식품이 날개돋쳤다. 동면개구리까지 잡아내 불에 튀겨 먹는 개구리요리 집이 도심에까지 진출해 성업중.
굼벵이가 쇠고기보다 비싼 한근에 2만∼3만원에 거래되고 그중에도 제주도 초가 용마름 속에서 자란 것이 가장 효험이 좋다고 비행기편에 실어 나르면서 제주에서는 굼벵이양식이 수지맞는 신종기업이 됐다.
국내생산만으로는 모자라 지렁이·코브라 등 작년한해 외국에서 수입한 금액이 66만3천달러.
수입코브라는 한마리에 10만원에 인기폭발이다.
지난6월 로이터통신의「그랜빌·워츠」기자는『곰쓸개, 특별한 치료약으로 한국에서 비싸게 팔리다』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 이같은「보신열기의 기이한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먹을 준비가 되어있는 한국인」을 신랄히 풍자했다.
『이들 식품들은 쇠고기·돼지고기 같은 동물성식품과 같이 양질의 단백질과 약간의 다른 영양분이 있을 뿐 그밖의 다른 약효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읍니다.
특히 정력에 좋다는 것은 근거가 없어요.』
경희대 한의대 이상인교수의 말.
정신과전문의 백상창박사는『우리의 전통적인 보신콤플렉스에서 연유하는 일종의 병리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인삼·녹용 등 보약에 대한 맹신이 오늘의 향락적 사회풍조 속에 변형돼 나타난 것이라는 풀이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과 비판에도 불구, 강정식붐이 쉽게 식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건강식품 홍수시대>
「정력증강」을 내세우는 강정식과는 달리「성인병예방」「노화방지」「회춘」등을 내건 건강식품의 범람도 건강관리열의 한 단면.
알로에·현미효소·현미식초·해조분말·클로렐라 등 1백여 가지가 넘는 건강식품이 등장해 팔리고 있다.
이들 식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만 전국에 5백여군데. 그중 다수는 수입품이다.
알로에의 경우 작년한해 2백만달러 어치가 수입됐다.
현미효소의 작년한해 판매액이 20억원을 기록, 이들 강정·건강식품을 모두 합할 경우 연간 적어도 1천억원 이상의 돈이「건강증진」에 쓰여지고 있다는 추산이다.
공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무공해 농작물도 인기상품으로 등장했다.
박영모씨(48·서울 방배동)는 2년째 무공해농산물 애용자. 동네 슈퍼마키트의 건강식품코너에서 무공해 채소에 맛들인 박씨는 이번 겨울에도 경기도 양주의 재배농가에 특별 주문해 김장을 했다. 값은 일반 무우·배추보다 30%가량 비쌌지만 박씨는 자연식을 한뒤『확실히 건강이 좋아졌다』고 믿고있다.
수도물 대신 지하수를 뚫어 정수해 마시거나「생수」란 이름의 탄산음료를 식용으로 상용하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강정·건강식·헬드클럽 붐은 과연 우리를「건강」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즘도 한달 l5명꼴로 에어로빅댄스를 하다 허리·무릎·발목 등 관절에 통증을 일으켰다는 주부들이 찾아옵니다. 자신의 몸이 굳어진 것은 생각지 않고 마음만 젊은 기분에서 무리한 운동을 하다 일어난 부작용이지요. 심하면 관절염으로 악화되는 수도 있어요.』

<병고치려다 병얻어>
강남성모병원 정형외과과장 문명상박사(53)의 말.
지난해 이화여대 최정윤씨의 석사학위논문에 따르면 서울시내 1개 헬드클럽 이용자 2천명을 조사한 결과 남자의 33%, 여자의 13%가 운동 중 근육통이나 관절통을 일으켜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건강을 증진하려다 병을 얻은 결과다.
『강정식·건강식 등은 의식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읍니다. 흔히 알칼리성·산성체질 운운하며 자연식을 강조하나 그것보다는 평소 규칙적인 습관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영양이 많은 음식을 불결한 식기에 담아 먹는 것 보다 영양은 적더라도 깨끗하고 위생적인 식기를 사용하는 편이 의학적으로는 나아요. 과식·폭음을 한뒤 사우나탕에서 목욕을 하지말고 미리 담배나 술을 절제하는 습관이 소중합니다.』
연세대가정의학과 윤방부교수는「좋은 것을 다 먹고도 조선조의 임금들이 30세 전후로 단명」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윤교수는 가정의 화목을 통한 정신적 안정이 생활의 절제와 함께 건강의 또한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서울대전약대학장 홍문화박사도 요즘 유행하는 강정·건강식품을「건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는 탓」이라고 했다.

<요가수련생 5천명>
홍박사는 사람의 육체적 건강은「먹고 자고 일하고 쉬는」모든 과정에서 적정을 유지하는데 있는데, 이중 어느 한부분만을 특별히 증진하는 것으로 모두가 해결되는 것으로 믿는 것은「무지」의 소치라는 것이다. 헬드클럽이나 강정·건강식품이 주로 운동과 음식물을 통한 건강관리라고 한다면 이와는 전혀 각도를 달리해 정신적인 트레이닝에서 건강의 열쇠를 찾으려는 흐름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요가·단전호흡·선 등이 그것.
한국요가협회 강사 김수옥씨(27)는 병을 고치려 요가를 배우다 요가강사가 된 경우.
『정신적 안정과 신체균형을 유지하는데는 요가가 최고의 운동』이라고 단언한다.
허리통증을 치료하려고 4년전에 시작했다가 효과를 보고 심취, 지난해부터 아예 강사로 나섰다. 현재 전국에 5천여명이 요가수련을 받고 있다고 밝힌다.
이학숙씨(27·여·서울 청량리2동 449의7)는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증진하고 있다.
남편의 권유로 작년12월 한달 동안 강습을 받고 지금은 집에서 혼자 하고 있다. 정신이 맑아지고 온몸에 활력을 느끼게된 것이 그동안의 변화라고 했다. 전국의 수련생은 10만여명.

<맡은일마다 최선을>
불교의 오랜 수행법인 선은 현대의학에서도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30년전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선을 배웠다가 현재까지 선을 계속하고 있는 정신과의사 김종해박사(화종신경정신과원장)는 선이「돈이 들지 않고 부작용이 전혀 없이 마음의 안정과 심신의 균형을 얻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아침기상 후 40분, 취침전 40분을 30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50을 넘은 현재도 피로를 모를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박사는『선이나 요가나 단전호흡이나 모두가 놀라운 효과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신비화해서 맹신하는 것은 정신적인 강정식이나 마찬가지』라고 경고한다.
일상생활은 무절제하게 하면서 순간순간의 선이나 요가수련으로 건강을 증진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설명이다.
선이나 요가가 수련해가는 동안 정신력을 높여주어 심성의 변화까지도 촉진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에서의「건건한 생활태도」가 역시 중요하다는 것.
70을 넘은 나이에도 4시간 강의를 계속할 수 있는 건강을 실증하며 건강법강연에 바쁜 전 연세대교수 이길상박사는『과식하지 말 것, 적당한 운동을 할 것, 잠을 잘잘 것, 맡은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할 것』을 건강의 제1요체로 들었다.
이대의대 성낙응교수는 건강을「육체와 정신의 조화, 긴장과 이완의 균형상태」로 풀이하면서『육체를 떠난 정신만의 건강이나 건강을 떠난 육체만의 건강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교수는 일부 부유층의 호화 혤드클럽, 자연식애용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바람직한 건강관리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
호화시설의 헬드클럽은 그 자체가 인공적인 환경으로 그렇지 않아도 자연과 유리돼 약해진 현대인에겐 오히려 불건강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그런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계층과의 위화감도 사회적 건강에 문제로 지적했다.
전 서울대농대교수 유달영박사는 지난해 작고한『나는 코리안의 아내』주인공 김주항씨와 그 부인「아그네스」여사의 생활을 건강의 한 모델로 들었다.
홍제동야산을 일궈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다시피 하는 창조적 생활속에서 80넘게 건강을 누린 김씨부부의 경우야말로 가장 바람직한「건강」이라는 것이다.
서울대보건대학원 허정교수는 건강에 대한 지식의 보급을 강조했다.
참된 건강에 대한 지식의 빈곤이 오늘날의 유행적 건강관리열, 이상 강정식품을 낳는 배경이라는 주장이다.
건강에 대한 과잉관심과 지식빈곤의 역설속에 우리는 있는 셈이다.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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