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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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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청상과부 두아(竇娥)가 시어머니 채파(蔡婆)와 살았다. 건달 장려아(張驢兒)가 두아에게 혼인을 졸랐으나 거절당한다. 그러자 채파 독살을 꾀하다 실수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다. 장려아는 뇌물로 관리를 매수, 두아에게 살인죄를 씌운다. 형장에 선 두아는 세 가지 소원을 빈다. "피가 솟구쳐 깃발 위 흰 명주에 튈 것이다." "6월에 눈이 날릴 것이다." "3년간 극심한 가뭄이 들 것이다." 두아의 저주는 그대로 실현돼 사람들을 떨게 한다. 훗날 관리가 돼 돌아온 두아의 아버지는 혼령으로 나타난 두아의 호소를 듣는다. 마침내 범인을 잡아 처형, 그 억울함을 푼다.

관한경(關漢卿)이 쓴 중국 원대의 대표적 희곡 '두아원(竇娥寃)'의 줄거리다. 중국인은 '두아원'을 각색한 경극(京劇) '유월설(六月雪)'을 보며 열광한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늘져 어두운 곳과 구부러져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을 중국에서는 '핑판(平反)'이라고 한다. 핑판의 주역으론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가 자주 거론된다.

"문혁(文革)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또 죽었는가. 실제 나쁜 사람은 전체 피해자의 5%에 불과하다." 1978년 당 조직부장에 임명된 뒤 핑판을 적극 추진했던 후야오방의 말이다. 그에 의해 복권된 사람은 300만 명에 달한다.

오늘 중국에선 후야오방에 대한 핑판이 시도된다. 사망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그를 기리는 행사가 당 차원에서 열린다. 탄생 90주년(20일)이 계기다. 82년 총서기가 된 그는 경제개혁뿐 아니라 정치개혁도 추진했다. 좌파는 그런 그에게 "부르주아 자유화 잘못을 저질렀다"는 모자를 씌워 87년 실각시켰다. 89년 그가 사망하자 추모 군중이 천안문 광장에 몰려 6.4사태를 촉발시켰다. 이후 '후야오방'은 금기가 됐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후야오방이 핑판으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쌓였던 중국인의 한을 풀어줬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후야오방 핑판에 나선 게 중국이 또 한 차례 도약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중국의 핑판은 분풀이보다 한풀이에 가깝다. 건설적 효과가 있다. 반면 우리 정치는 한풀이가 아닌 분풀이 핑판에 골몰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새로운 원(寃)만 쌓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