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부산APEC] 외국 CEO들에 '한국 투자' 물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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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한 외국 기업인 및 투자자들이 한국의 투자환경에 대해 평가한 것을 종합한 결론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눈부신 정보기술(IT), 우수한 인력, 투자 유치에 대한 정부의 열의 등을 한국의 투자 매력으로 꼽았다. 그러나 선뜻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에는 각종 규제와 미비한 법령, 노사문제 등이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 "중국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외국 기업인 및 투자자들은 "한국은 연구개발(R&D) 기지로서 장점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16일 부산시청에서 있었던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글로벌 CEO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이 자리에서 세계적인 온라인 경매업체인 이베이의 멕 휘트먼 사장은 "한국은 혁신과 전자상거래의 중심지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원지"라고 격찬했다. 중국이나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글로벌 기업들에 한국이 '테스트 베드'(실험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이 있는 미국 퀄컴의 폴 제이콥스 사장도 "한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이 많은 '얼리 어답터'들"이라며 "이 때문에 통신분야의 세계적 기업들이 한국을 이상적인 연구개발 거점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앤스티스 머크 사장은 줄기세포 연구 등 한국의 생명의료 분야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대다수 외국 기업인도 한국 시장에 대해 비슷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APEC 투자설명회에서 만난 스위스의 로봇 시스템 생산업체인 '규델'의 한스 쿠르트 사장은 "우리 같은 하이테크 기업에는 기술과 인력이 뛰어난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말했다. 인천 남동공단과 부산 공장 증설을 위해 14일 산업자원부와 250만 달러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쿠르트 사장은 "지금까지의 한국 사업에 만족하고 있으며, 앞으로 아시아 허브로 한국 공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투자유치 전략이 중국과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KOTRA의 외국인 투자유치 조직인 '인베스트 코리아'의 알란 팀블릭 단장은 "우리가 유치하려는 투자는 싼 노동력과 큰 시장을 노리는 중국 투자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고급 인력과 인프라, 고품질 원료.부품의 안정적 공급, 민주주의에 기반한 법체제는 중국보다 유리한 한국의 경쟁력임을 외국 투자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국적 기업 CEO들이 16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열린 간담회에 앞서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CEO들은 한국이 국제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왼쪽부터 브릴리언트 미 상의 부회장, 폴 제이콥스 퀄컴 사장, 빌 로즈 씨티그룹 회장,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멕 휘트먼 이베이 사장, 데이비드 앤스티스 머크 사장. 부산=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2%'가 부족한 투자환경=한국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인들은 정부가 좀 더 과감한 규제완화와 제도 정비 등 투자환경 개선에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선진국 경제의 문턱에 다다랐지만, 아직 개도국 수준의 관행이나 제도가 남아 있어 투자를 망설이게 한다는 반응이다.

일본의 LCD용 감광제 및 세정용제 재처리 기업인 도요고세이(東洋合成)공업은 한국에 첫 투자를 결정하고 산자부와 MOU를 체결했다. 이 회사의 하루타 마사히코(春田雅彦) 전무는 "세정용제 재처리업은 일본에서는 제조업으로 분류되지만 한국에서는 폐기물처리업으로 분류돼 공단에 입주할 수 없다"며 "산자부와 KOTRA가 나서서 도와줘 어려움은 풀릴 것 같지만 양국의 법체계가 달라 당황했다"고 말했다.

앤스티스 머크 사장은 "생명공학 부문의 투자유치를 위해 한국은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해야 하며 시장개방도 더 진전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제이콥스 퀄컴 사장은 "한국에서는 시민단체.국회.정부 등이 개입하는 사례가 빈번해 외국 기업 입장에서 투자 여부 및 확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며 통신사업 분야에서 대폭적인 규제완화 필요성을 지적했다. 빌 로즈 씨티그룹 수석부회장은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의 직접개입을 줄이는 대신 금융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이론 브릴리언트 미국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세무조사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단 : 강영진(단장), 안성규,최원기,홍병기,최상연,이현상,권혁주,김원배,서승욱,박현영,정강현,변선구,김태성 기자

부산 주재 = 강진권,김관종,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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